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인 무역협정 파기와 고율(高率)의 관세 부과로 대대적인 무역 전쟁을 벌였으나, 지난해 미국은 금융 위기 이후 10년 만에 가장 큰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서비스 부문을 제외한 상품수지 적자는 미 건국 이후 243년 만에 최대치를 찍었다.

미 상무부는 6일(현지 시각) 2018년 무역적자는 6210억달러(701조원), 서비스 부문을 제외한 상품수지 적자는 8913억달러(1006조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2016년 무역적자가 5020억달러였는데, 트럼프 정권 2년간 1000억달러 넘게 늘어난 셈이다. 특히 무역 전쟁의 '주적(主敵)'이었던 중국과의 상품 적자도 4190억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이 무역적자로 약탈당하지 않게 하겠다"던 트럼프가 '사상 최대 적자'의 장본인으로 드러나자 미국은 벌집을 쑤신 듯했다. 이날 언론들은 "트럼프가 '1000억달러의 사나이'가 됐다"(블룸버그) "무분별한 '아메리카 퍼스트'의 실패"(뉴욕타임스)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트럼프의 거센 무역 전쟁 공세에 각국이 줄줄이 무릎을 꿇는 것 같았는데 왜 이런 대참사가 벌어졌을까.

사실 미국은 무역적자가 문제가 되는 나라가 아니다. 국민들 생활 패턴상 저축보다 소비가, 수출보다 수입이 많다. 또 제조업보다 핵심 기술이나 서비스·자본투자로 벌어들이는 돈이 많기 때문에 상품수지 적자가 클 수밖에 없다. 만약 적자가 문제라면 달러를 찍어내면 해결된다. 미 달러가 세계 통화의 기준인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1975년 이래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으면서 최강대국 지위를 유지하는 이유다.

오히려 현재의 무역적자는 미국 경기가 너무 좋아서 빚어진 측면이 크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트럼프 정부의 대대적 감세(減稅)와 규제 완화 정책으로 일자리와 소득이 늘면서 외국산 원료와 소비재 수요가 늘었다"고 했다. 미국이 호황을 누리면서 수입 관세를 높였지만 기업과 소비자들이 충분한 구매 여력을 유지하고 있어서 수입이 늘었다는 얘기다. 수출은 그렇지 못했다. 중국 등 상대국도 미국산 제품에 보복 관세를 매겼다. 중국 소비자들은 가격이 뛴 미국 수입품을 감당할 수 없었다. 미국산 콩·밀·돼지고기 대중(對中) 수출이 줄어든 이유다. 실제로 2017년과 비교하면 관세 인상에도 불구하고 대중 수입은 오히려 6억7000만달러가 늘었고, 수출은 7억4000만달러 줄었다. 이런 식으로 미국의 무역적자가 폭증한 것이다.

미국은 이런 '호황형 무역적자'를 안고 계속 순항할 수 있을까. 무분별한 관세 전쟁이 세계 경제를 침체시키고 이것이 미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우선 수입품 관세 부담이 미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전가되고 있다.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은 이를 "100달러짜리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가 붙어 125달러가 되면, 똑같은 물건을 관세 없는 115달러짜리 베트남·멕시코산으로 구하게 된다. 소비자가 손해를 보는 결과"라고 설명한다.

각국의 보복 관세로 미국의 수출 주력 부문도 휘청거리고,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 기반인 중서부 농가와 철강 업계가 타격을 받고 있다. 지난해 미 중서부 곡창지대 농가들의 파산보호 신청이 급증했는데, 이는 중국 등의 보복 관세로 수출이 막혀 부채가 급증한 탓이다. 2002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무역적자를 잡겠다며 중국에 30%의 철강 관세를 부과했다가 국내 일자리 20만개가 날아가자 1년 만에 철회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보호무역주의는 필패한다는 경제 문법도 모르는 트럼프의 '무역 문맹'이 자충수가 됐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감세 정책 약발이 올해 중 떨어지면 잘못된 무역 정책의 부작용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