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문을 연 서울 강서구 마곡동 서울식물원이 5개월 만에 200만명 가까운 방문객을 모았다. 시민들 사이에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힌다. 이곳을 명소로 여기는 것은 시민뿐만이 아니었다. 매일 오후 6시 폐장 후 인적이 끊기면 쥐들이 식물원에 출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서울식물원 관계자는 6일 "온실을 둘러보다 보면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쥐들이 쉽게 눈에 띈다"며 "하와이무궁화를 갉아 먹고 있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전 국민 쥐잡기 운동이 벌어진 197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이 관계자는 "50년 만에 쥐 소탕 작전을 벌여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지중해 12개 도시 식물 3100종이 들어선 서울식물원이 최근 대대적인 구서(驅鼠·쥐잡기) 작업에 돌입했다. 지난겨울부터 온실에서 쥐가 빈번하게 발견됐기 때문이다. 지름 100m, 아파트 8층 높이 온실(7555㎡)은 한겨울에도 섭씨 10~20도가 유지될 정도로 따뜻하다. 겨울을 나려는 쥐들에겐 천국이 따로 없다. 갉아 먹을 꽃과 나무, 열매가 가득하고 필요할 때마다 목을 축일 커다란 인공 연못도 조성돼 있다.

바르셀로나, 이스탄불 등 세계 12개 도시 식물 3100종이 빼곡한 서울 강서구 마곡동 서울식물원 온실의 내부. 지난해 10월 마감 공사가 끝나지 않은 채 개장한 이곳은 외부와 연결된 통로를 통해 쥐들이 잠입해 최근 대대적인 쥐잡기에 나섰다.

밤에만 몰래 드나들던 쥐는 갈수록 대담해지며 최근에는 방문객이 붐비는 낮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식물원 측으로 민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식물원은 지난 두 달간 쥐덫과 끈끈이를 구매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설치했다. 놓기만 하면 쥐가 잡힌다고 한다. 식물원 관계자는 "1~2마리 정도로 예상하고 금방 소탕하겠거니 했는데 오판이었다"며 "두 달간 여러 마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잡히는 쥐는 직원이 직접 땅에 묻어 폐기 처분한다.

서울식물원에 쥐가 출몰하게 된 것은 원래 마곡지구가 논두렁이었기 때문이다. 마곡지구를 현장 방문했던 전문 방제업체 관계자는 "원래 논이었던 곳이라 사실상 이 땅의 원주민은 사람이 아닌 들쥐"라며 "서울식물원뿐 아니라 인근에 지어진 LG사이언스파크 등도 공사 초반 출몰하는 쥐로 골치를 앓다가 방제업체의 도움을 받아 최근 안정기에 접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LG사이언스파크에서 쫓겨난 쥐들은 마감공사가 끝나지 않은 채 개장한 서울식물원을 노렸다. 완벽하게 차단 처리가 되지 않은 건축 마감재 사이나 외부 연결 통로 등을 통해 잠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월 처음 목격된 이후 공조시설, 전선 배관 등 곳곳에서 쥐 발자국과 분변이 발견됐다. 쥐가 드나드는 것으로 추정되는 구멍도 3개나 발견됐다.

자체적인 쥐잡기 운동이 버거워지자 서울식물원은 지난달 말 전문 방제업체에 쥐잡기를 의뢰했다. 전문 업체의 도움을 받더라도 요소요소에 잠입한 쥐를 전부 잡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방제업체 관계자는 "눈에 보이는 게 몇 마리 수준이라면 뒤에 숨은 것은 수백 마리"라며 "초기 퇴치에만도 4개월 정도 소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 오는 5월 정식 개관을 앞둔 서울식물원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쥐는 진드기와 함께 대표적인 바이러스 감염 매개체로 분류된다. 질병관리본부 조은희 인수공통감염병관리과장은 "쥐의 분변으로 배출된 바이러스가 피부나 호흡기로 침투해 전파되는 렙토스피라증, 신증후군출혈열에 감염되는 환자는 연간 600여명"이라며 "쥐의 오줌에 오염된 물에 피부가 닿는 것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식물원 관계자는 "정식 개장할 5월이 되기 전에 식물원 내에 있는 쥐를 전부 소탕해 식물원을 찾는 시민에게 불편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