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유럽연합(EU)의 외교적 지위를 ‘국제기구’에서 ‘국가 수준’으로 다시 격상했다. 지난해 말 미국 정부가 사전 통보 없이 EU의 외교적 지위를 격하한 지 약 4개월 만이다.

4일(현지 시각) 고든 선들랜드 EU 주재 미국 대사는 성명을 통해 미국이 EU의 외교적 지위를 원상복구했다고 밝혔다. 선들랜드 대사는 "미국과 EU는 협력할 때 강해진다"며 "유럽의 안전과 번영은 미국의 안전과 번영과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했다.

2018년 6월 9일 캐나다에서 열린 G7(선진 7개국) 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맨 오른쪽)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등 유럽국가 정상들에 둘러싸여있다.

지난 1월 8일 EU집행위원회는 미국 정부가 사전 통보 없이 EU의 외교적 지위를 낮췄다며 이와 관련해 미국 측에 항의했다. EU 측은 미국이 지난해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EU의 외교적 지위를 강등했다고 추측했다.

EU가 미국의 강등 조치를 파악하게 된 것은 지난해 12월 5일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 때였다. 미국 측이 데이비드 오설리번 미국 주재 EU대사에게 외교 등급이 낮춰진 사실을 통보한 것이다. 오설리번 대사는 오설리번 대사는 150명이 넘는 미국 주재 외교관들 중 서열이 20~30위였으나 당시 장례식에 거의 마지막 순서로 초대를 받았다. 외교적 지위가 강등되면 미국 주재 외교관들은 미국 정부의 고위급 행사에 초대받을 기회가 줄어든다.

당시 이 조치를 둘러싸고 무역과 나토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 양측 이해관계에서 미국이 EU를 압박하기 위한 취지라는 분석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주의적인 무역과 동맹질서가 미국에 해를 끼친다며 EU를 비판하고 브렉시트(영국의 EU탈퇴)를 지지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EU의 대미 무역흑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며 유럽 자동차·철강 등에 관세 압박을 넣고 있다. 또 나토 탈퇴를 시사하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마야 코치얀치치 EU 대외관계청(EEAS) 대변인은 "미국이 EU의 외교적 지위를 정상화해 기쁘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EU의 외교적 지위가 복구됐다고 해서 양측간 관계가 쉽게 개선되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BBC는 "무역 관계가 여전히 긴장 상태에 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주 "EU는 미국 농산물과 자동차에 매우 엄격한 대우를 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들의 상품을 구매하지만 그들은 우리 물건을 사지 않는다"며 불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