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기(乾期)가 시작되는 6~7월 무렵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의 누(영양의 한 종류) 떼들은 물 냄새를 따라 800㎞ 넘게 질주한다. 앞서가는 누를 따라 얼룩말·가젤까지 가세해 최대 200만 마리에 이르는 초식동물의 '대이동'이 펼쳐진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우기와 건기의 구분이 모호해진 요즘 누 떼들은 갈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2005년부터 탄자니아에 살면서 세렝게티 초원을 촬영해 온 이종열(51) 다큐멘터리 감독은 누 떼의 이상 행동을 직접 목격했다. 현지에서 만난 이 감독은 "기후변화로 더는 초식동물의 대이동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고 했다. "누 떼가 풀을 먹으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갑자기 국지성 호우가 와서 이미 지나온 길 뒤에 풀이 또 나요. 누 떼들이 갈피를 못 잡고 뒤로 돌아가기 시작해요. 수백만년 동안 비슷한 경로로 이동하던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생태계는 꼬리를 물고 연결된다. 길목에서 누 떼를 기다렸다가 사냥하던 사자들에게도 문제가 닥쳤다. "사자는 분명히 누 떼가 오는 소리를 들었는데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거죠. 암사자들은 기를 쓰고 쫓아가는데 늙은 수사자는 따라갈 힘이 없어서 뒤처집니다. 지름 15㎞ 영역에서 천천히 어슬렁거리면 됐던 사자가 240㎞씩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돼 버렸어요."
이 감독이 기후변화를 주제로 찍은 영화 '세렝게티'는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감독은 "사람은 더우면 에어컨이라도 트는데, 나무도 없는 평평한 초원에서 동물들은 숨을 곳이 없다"고 했다. "야생 사자 수가 지난 20년 동안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대로라면 2050년쯤엔 세렝게티에서 뛰어노는 사자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