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배 LH토지주택박물관 학예사

내가 정조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12년 일본 교토 외곽의 고려미술관을 방문하면서다. 빡빡한 답사 일정 때문에 이 박물관을 코스에 넣을지 말지 고민했었다. 그래도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알아보는 것이 의미 있겠다 싶어 방문을 결심했다.

박물관은 아담하지만 잘 정돈돼 있었다. 앞마당에는 석상, 석탑 등과 같은 대형 유물을 야외 전시에 잘 활용하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설립자가 수집가로서 상당한 안목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다양한 고고·미술사·민속품이 전시돼 있었다. 정작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박물관 설립자에 관한 내용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서 고향 경북 예천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간 정조문은 숱한 고난이 닥치는 어려운 시절을 거쳐 자수성가했고, 어렵게 모은 재산을 털어 일본 내에 흩어져 있던 조선의 유물을 모아 박물관을 만들었다. 수집뿐이 아니었다. 그가 일본인 역사학자들을 후원하면서 고대 한·일 관계를 조명하는 학술지를 간행했으며 일본 내 조선 고대문화와 관련된 여러 유적을 답사하는 고적 답사회도 운영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이때의 인연이 이어져 2015년 정조문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참여하게 됐다.

지난달 서울에서 이 다큐멘터리 '정조문과 항아리'가 상영됐다. 다큐에선 정조문이 철화(鐵畵)로 배를 그린 분청 항아리를 쓰다듬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치 배를 타고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본인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 같다. 울퉁불퉁한 그 분청 항아리가 곧 자신과 같이 여겨졌으리라. 안타깝게도 정조문은 한 번도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1989년 눈을 감았다. 조국의 엇갈린 이념 분쟁이 그를 남과 북 어디에도 발 딛지 못하게 한 셈이다. 조국이 통일되면 조국으로 옮겨 오겠다던 정조문의 바람이 이루어져 그가 수집한 유물들이 새롭게 빛을 볼 날이 올 것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