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성추문 논란으로 공식 활동을 중단했던 김기덕(59) 영화감독의 작품이 일본에서 다음 달 초 열리는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확정돼 논란이 일고 있다.

OSEN

김 감독의 영화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은 다음 달 7일부터 열리는 ‘제29회 유바리국제판타스틱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이 영화는 2017년 촬영이 완료됐지만 정식 개봉은 하지 못했다.

28일 일본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김 감독의 영화 상영을 두고 일본 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불거진 김 감독의 성폭력 의혹과 함께 출연 배우 고이데 게이스케와 아라이 히로후미 역시 성(性) 문제로 과거 구설에 오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게이스케는 2017년 미성년자와 술을 마시고 성관계를 한 것이 문제가 돼 출연 중이던 드라마에서 하차했고, 히로후미는 지난해 7월 30대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영화에 여성이 다수의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포함됐다는 점도 논란이 됐다.

영화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가제)’의 일부 장면

일본의 네티즌 반응은 양분됐다. 일부 네티즌은 "작품에는 죄가 없다"며 상영을 해도 된다는 입장인 반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국여성민우회 홈페이지 캡처

김 감독의 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으로 놓고 한국 여성계도 반발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달 12일 영화제 측에 개막작 취소를 요구했으나 지난달 20일 개막작 초청을 취소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여성민우회는 27일 공식 입장문에서 "김 감독은 그동안 성폭행 피해 증언이 이어져온 상황에서도 아무런 사과나 자기성찰 없이 영화계 활동을 이어왔다"며 "이번 유바리영화제의 결정은 가해자가 제대로 된 사과나 마땅한 책임을 지지 않고서도 버젓이 살아남을 수 있는 영화계의 관행을 다시 한번 공고하게 만들어준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김 감독은 지난해 3월 MBC PD수첩이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 편을 통해 자신의 성폭력 의혹을 보도한 뒤 국내 공식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PD수첩 제작진과 이 보도물에 출연한 여배우 A씨 등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제작진과 여배우 모두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김 감독은 성추문 여파로 비난 여론이 들끓자 카자흐스탄에서 영화를 찍는 등 해외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홈페이지에 따르면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가제)'는 영화제 시작일인 다음 달 7일 오후 6시부터 2시간가량 상영된다. 이 영화는 다양한 연령과 직업군의 사람들이 군함을 타고 여행하던 중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배우 안성기, 장근석, 이성재, 류승범, 오다기리 조, 후지이 미나 등이 출연한다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판타스틱 영화제로 SF, 공포, 판타지, 모험, 액션, 서스펜스 등의 영화를 다룬다. 훗카이도의 탄광촌이던 유바리시가 지역 개발을 위해 1990년부터 개최했다. 김 감독은 지난 2016년에도 원전 사고를 소재로 한 영화 '스톱'으로 이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올해 영화제는 3월 7일부터 3월 10일까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