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갑수 21세기에너지연구회 명예회장

최근 미세 먼지가 기승을 부리자 매일 아침 먼지 농도를 살피고 마스크를 챙겨야 할 만큼 1급 발암 물질인 미세 먼지는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공포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 겨울에는 3일은 춥고 4일은 미세 먼지가 기승을 부린다는 '삼한사미(三寒四微)'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중국발 미세 먼지에 대한 적극적 저감 대책을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내 발생원에 대한 엄밀한 조사를 통해 미세 먼지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공장 매연, 노후 경유차 등과 함께 미세 먼지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석탄화력발전 비중을 줄이는 게 핵심 과제로 등장했다. 하지만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탈(脫)원전 정책은 미세 먼지 저감은 물론 지구적 차원의 온실가스 감축에 역행하고 있다. 환경론자들이 대표적 청정 에너지인 원전을 반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환경론자들이 내세우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도 친환경 에너지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정부가 계획 중인 원전 축소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고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도 어렵다. 최근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중심으로 한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탈원전 반대'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이면서 "숨 쉴 수 있는 푸른 하늘 만드는 원자력을 더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한 것도 이 때문이다.

원전은 석탄이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에 비해 미세 먼지,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배출이 현저히 떨어지는 친환경 에너지원이다. 하지만 정부의 원전 가동 축소 방침 이후 석탄 및 LNG 발전이 그 공백을 메우면서 미세 먼지 발생을 부추기고 있다. 2017년 OECD 회원국 중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방사선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으로 탈원전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원전에서 발생한 사고는 모두 방사선 유출과는 관련이 없는 경미한 것이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지진이 아니라 지진 후 쓰나미로 발전기가 바닷물에 침수되는 바람에 벌어진 사고다. 인근 오나가와 원전은 같은 쓰나미에도 방벽을 높게 쌓아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대선 공약이기 때문에 밀어붙이겠다는 태도다. 국민 건강이 위협받고 전기 요금 상승 요인이 누적되고, 에너지 안보는 위협받고 있다. 국민 안전과 건강을 위해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자명하다.

원전 사고에 대한 불안감은 막연한 것으로 발생 확률도 극히 낮다. 당장 우리 몸에 축적되는 '침묵의 살인자' 미세 먼지를 더 심각하게 걱정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비해 지구적 차원의 이산화탄소 의무 감축을 약속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준수하기 위해서라도 탈원전 정책을 더 이상 고집해서는 안 된다. 대선 공약은 모두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사회적 상황이 바뀌면 얼마든지 변경 또는 취소할 수 있다. 성급하게 몰아붙인 탈원전 정책은 반드시 재고(再考)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