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보기에 셰프 채민구(가명·27)씨는 '꿈을 이룬 경우'였다. 그는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했다. 학창 시절부터 도시락 장사도 하고 푸드트럭도 하며 3년 넘게 종잣돈을 모아 자기 식당을 차렸다. 소셜미디어에 식당 이름을 검색하면 '가성비 좋고 분위기 좋은 맛집'이라는 리뷰가 뜬다. 하지만 정작 채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행복할 뿐, 내가 손에 쥐는 돈은 최저시급이 조금 넘는다"며 "내 또래 중에 나는 일하고 있다는 점에선 '중'이고, 실제 수입으로 따지면 '하'"라고 했다.

"아무리 해도 손에 쥐는 돈은 월 150만원이에요. 아버지가 식당 차려줬다는 다른 셰프 얘기를 들으며 '나는 이렇게 돌아왔는데…'라는 생각이 들죠."

박탈감은 왕왕 허탈감과 함께 왔다. 박탈감이 위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라면, 허탈감은 자신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다. 음악 강사 고수미(가명·24)씨도 그동안 자신이 기울인 노력과 지금 손에 쥔 결과를 놓고 허탈해했다.

"고교 시절엔 월 100만원씩, 대학 와선 학기당 500만원씩 내고 악기 레슨을 받았어요. 하지만 지금 제가 방과 후 수업과 음악 학원을 돌며 버는 돈은 월 100만~120만원이에요. 여기서 더 올라가려면 유학을 가야 하는데 유학은 금수저나 가는 거죠. 아니면 그냥 이렇게 사는 거죠."

취업 준비생들이 '노력해도 취업하기 어렵다'는 불안감에 짓눌린다면, 취업에 성공한 이들은 '이 정도를 누리려고 그 고생을 했나' 하는 회의감에 시달렸다.

서정리(가명·24)씨는 수도권 대학 졸업 후 유치원 교사로 취업했다. 처음 들어갈 때 원장은 다른 사립 유치원 교사들만큼 주고, 종일반 수당도 주겠다고 했다. 말뿐이었다. 6세반 한 학급을 맡을 줄 알았는데, 6세반 세 학급을 모두 돌봐야 하는 날이 많았다. 월급이 최저시급에 못 미치자, 원장은 서씨에게 '특강 수당' 명목으로 월 20만원씩 추가로 지급했다. 하지만 원장이 더 넣어준 돈 20만원을 서씨는 매달 원장 딸의 개인 통장으로 다시 부쳤다. 원장은 가끔 유치원 물려받으려고 방송통신대에 들어간 자기 아들의 과제까지 서씨에게 떠맡겼다.

서씨처럼 대우가 박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만 허탈해하는 게 아니었다. 고교 교사 오다빈(가명·26)씨도 "앞으로 (제가 자랄 때보다) 계층이 떨어졌으면 더 떨어졌지, 오를 거라고는 생각 안 한다"고 했다. 누군가에겐 임용고시에 붙어 평생 직장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꿈이고 목표지만, 그걸 이룬 오씨는 "이 돈으로는 부를 쌓을 순 없다"고 했다.

20대가 느끼는 이 같은 박탈감과 허탈감, 불안감을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노력의 배신'이라고 정의했다. 고도성장시대 한국인은 부모보다 잘사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게 실은 예외적인 시대의 예외적인 축복이었는데도, 수많은 한국인이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노력 만능론'을 자녀들에게 주입했다.

그렇게 자란 20대가 막상 사회에 진입하자 '노력=성공'이란 공식이 통하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해도 취업 잘할 거라는 보장이 없다. 간신히 직장을 잡아도 월급이 나올 뿐, 집 살 전망은 아득하다. 자신은 허덕이며 먼 길을 돌아왔는데, 소셜미디어에는 자기보다 쉽게 지름길을 간 듯한 또래들이 숱하게 널려 있다. 박 교수는 "지금 20대에게 '어떤 일이건 밑바닥부터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해줄 필요가 있지만, 부모 세대와 다른 그들의 절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꼭 우리나라 20대만 그럴까. 20대의 배신감은 세계 곳곳에서 감지된다. 표면상으론 젊은이들이 보수화하는 듯한 나라도 있고 좌파 지향으로 치닫는 듯한 나라도 있다. 하지만 깊은 심중을 들여다보면 2000년대 전 세계에 불어닥친 경쟁만능주의, 기득권 세력에 대한 역풍이 공통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 "최근 2~3년 미국과 프랑스, 호주 등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8월 갤럽 조사에서 18~29세 미국인 과반(51%)이 사회주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