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법조계에선 '트럭 기소(起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돈다. 검찰이 이른바 '적폐 수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많이 나온 말이다. 검찰이 인력을 대거 투입해 전(前) 정권 인사들을 탈탈 털 듯 수사한 뒤 트럭 분량의 방대한 수사 기록을 만들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는 행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표적 사례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꼽힌다. 그는 대법원장 재임 시절 일선 재판에 개입하는 등 직권을 남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를 잘한다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 30여명이 8개월간 수사를 벌였다. 이래서 나온 수사 기록이 A4 용지 17만5000쪽 정도다. 검찰은 통상 수사 기록 500쪽을 한 권으로 묶는다. 양 전 대법원장의 경우 수사 기록이 350권이 된다. 1권당 높이는 5㎝, 무게는 2.5㎏ 정도다. 이렇게 따지면 그의 수사 기록 높이는 17.5m다. 아파트 6층 높이다. 무게는 875㎏이다. 1t 트럭으로 기록을 날라야 한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수사 기록도 20만쪽이다. 높이가 20m다. 웬만한 빌딩 높이다. 무게는 1t이다.

전직 대통령들도 '트럭 기소'를 당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 기록은 12만쪽이다. 12m 높이에 600㎏이 나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록(8만5000쪽)도 아파트 3층 높이다.

검찰은 과거 주요 인물을 수사할 때 대체로 작은 범죄 혐의들은 과감히 버리고 중요 혐의로 승부했다. 그런데 현 정권 들어 적폐 수사 과정에서 모든 혐의를 털어 기소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면서 수사 기록이 방대해진 경우가 많았다.

검찰의 수사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없다. 그러나 이런 '트럭 기소'가 피고인의 방어권과 연결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피고인은 재판에서 검찰의 공소 사실을 반박하며 유무죄를 다퉈야 한다. 그러려면 변호인들을 통해 수사 기록을 면밀하게 검토한 뒤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트럭 분량의 수사 기록을 제대로 검토하려면 많은 인력과 시간이 든다. 방어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결국 유능한 변호사들을 대거 고용해야 하고 돈도 많이 든다"며 "그럴 여력이 안 되면 수사 기록도 제대로 못 보고 검찰에 끌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한 원로 변호사는 "대형 로펌 변호사를 상당수 고용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도의 재력이 아니라면 수만 쪽에 달하는 수사 기록을 읽고 대응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재판을 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법원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구속 재판 기간(심급별 6개월) 안에 재판을 끝내기 위해 '몰아치기 재판'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은 보통 2~3주에 한 번 열린다. 그런데 구속 재판 기간 내에 선고를 하기 위해 주(週) 4회 재판을 하는 사례가 있다. 그러면 변호인들은 수사 기록 읽기도 빠듯해진다. 수사 기관 주장에 맞설 증거나 증인을 찾기는 더 어렵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주 4회 재판을 받았다. 그의 변호를 맡은 채명성 변호사는 최근 저서에서 '주 4회 재판을 하면서 검찰 기록을 파악하고 증인 신문(訊問) 사항을 만들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고 했다.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의 변호인들은 최근 주 4회 재판을 하겠다는 법원 방침에 반발해 총사퇴했다. '주 4회 재판을 한다면 변호인이 있으나 없으나 차이가 없다'는 이유였다.

전직 헌법재판관은 "검찰이 방대한 수사 기록을 내세워 기소한 사람에 대해 법원이 몰아치기 재판을 하면 어떤 피고인이라도 방어권이 사실상 무력해진다"며 "이 경우 검찰의 공소 사실대로 재판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수사 기관이 특정인에 대한 '표적 수사'를 벌였을 경우에도 법원이 이를 그대로 인정해주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중요 사건을 열심히 수사한 결과 범죄 혐의 수가 많이 나와 기록이 많은 것"이라며 "피고인 측이 수사 기록 열람·복사를 할 수 있도록 충분히 협조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