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맨부커상을 수상한 올가 토카르축(57)의 대표작 '태고의 시간들'(은행나무·최성은 옮김)은 가상의 폴란드 마을 '태고'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삼대에 걸친 니에비에스키 가족과 그 이웃뿐 아니라 동·식물과 커피 그라인더 같은 사물, 신과 천사들까지 짤막한 글의 주인공이 된다. 기이하고 신화적인 인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1·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 공산 정권의 지배까지 겪으며 야만의 시대를 건너간다. 폴란드의 비극을 환상적으로 풀어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과 비교되기도 했다. 출간을 기념해 이메일로 만난 토카르축은 "수난과 질곡의 역사를 겪어온 폴란드인들은 역사에 유달리 관심이 많고, 역사를 돌이켜보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작가는 세계를 우연이 지배하는 게임에 빗댄다. 토카르축은 "살면서 맞닥뜨린 여러 상황에서 우리가 내린 선택을 곱씹어보면, 우연의 섭리를 실감한다"면서 "그 순간 우리는 세상의 광대함과 스스로의 보잘것없음에 압도당한다"고 했다.

―소설은 '~의 시간'이라는 제목의 조각글로 나뉘어 있다.

"이 소설을 쓸 때,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그들의 시간이 서로 뒤엉켜 있는 실타래가 떠올랐다. 그 시간의 실타래를 풀어서 현실을 직조해보고 싶었다. 현재와 시간적 거리가 있기 때문에 신화화가 가능해졌고, 동화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기이하고 신화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술 취한 남자들에게 몸을 팔며 세상의 이치를 체득한 크워스카는 홀로 출산하면서 예언의 능력을 얻는다.

"크워스카는 데메테르와 같은, 여신의 신화에 뿌리를 둔 인물이다. 가부장적 세계에서는 누구나 동경할 수밖에 없는 강력하고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여성성을 지닌 인물이다. 소설에서 캐릭터를 다룰 때 단편적이지 않고, 복합적인 인물로 그려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

토카르축은 바르샤바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심리치료사로 일하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공산 정권하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스물여덟이던 1989년 첫 여권을 받았다. 여행에 영감을 받아 쓴 '방랑자들(Flights)'로 지난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수상했다. 당시 한강의 소설 '흰'도 함께 최종 후보에 올랐다.

―심리치료사로 일하다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

"심리치료사 일은 까다롭고, 힘들고, 부담이 컸다. 반면 글쓰기는 단 한 번도 날 지치게 한 적이 없다. 글쓰기의 매력은 다른 존재, 다른 사람과 교감하려는 시도에 있다. 글을 쓴 덕분에 다양한 방식으로 생을 경험할 수 있고,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있었다."

―공산 정권하에서 보낸 유년 시절은 어땠나.

"미처 많은 걸 인지하지 못해서 탄압받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어딘가에 갇혀 있는 듯한 구속감을 느끼곤 했다. 세상은 항상 어딘가 멀리 있는 것 같았고,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듯했다. 어쩌면 그래서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해지자마자 그토록 열심히 전 세계를 돌아다니게 됐는지도 모른다."

―2006년에 한국문학번역원 초청을 받아 한국을 방문했다.

"채소를 듬뿍 먹는 한국 음식과 사랑에 빠졌다. 용문사에서 혼자 템플 스테이도 했는데 정말 특별한 체험이었다. 광활한 한국의 산야와 현대적인 서울의 풍경이 만들어내는 또렷한 대비도 경이로웠다."

―불교의 어떤 점이 끌렸나.

"불교 철학에서 내리는 진단은 명료하고 정직하다. 모든 것은 고통이지만, 그 고통을 감내하려면 욕망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서로 주고받는 영향의 총체라는 관점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불교에서는 공감과 연민을 강조한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의 병든 세상을 치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약이다."

(인터뷰 번역: 최성은 한국외대 폴란드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