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현지 시각) 뉴욕에서 열린 인도계 미국 디자이너 나임 칸의 패션쇼 피날레에 관객들이 예상치 못했던 세 명의 모델이 등장했다. 1970년대 패션계를 주름잡았던 팻 클리블랜드(68), 알바 친(70), 캐런 비욘슨(67)이다. 얼굴엔 전성기 때 없었던 주름이 생기고 머리는 은발로 바뀌었지만, 화려하게 반짝이는 은색 드레스를 입고 나온 세 모델은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카리스마로 무대를 휘어잡았다. 쇼를 마친 뒤 클리블랜드는 취재진에게 말했다. "패션은 젊은 사람들만을 위한 게 아니에요. 패션은 모든 (연령대의) 사람을 위한 거예요."

올해 뉴욕 패션 위크 인도계 디자이너 나임 칸의 패션쇼에 등장한 중장년 모델들. 왼쪽부터 캐런 비욘슨, 팻 클리블랜드, 알바 친.

최근 뉴욕포스트는 "지난 16일 막을 내린 뉴욕 패션위크 행사에선 중장년 모델들이 런웨이를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한때 여성 패션모델들이 30대만 되도 모델로서의 수명이 거의 끝났다고 간주된 적이 있었다. 이제 그런 분위기가 사라지는 추세다. 특히 올해 뉴욕 패션위크에 대거 등장한 50대부터 60~70대 모델들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줬다.

13일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 패션쇼 마지막을 장식한 인물도 70년대 스타 모델 가운데 한 명인 패티 핸슨(62)이다. 얼굴에 함박웃음을 띤 채 경쾌한 발걸음으로 무대에 등장한 그는 백스테이지에서 "믿을 수가 없다. 열여섯 살 때로 돌아간 것 같다"면서 "그간 세월이 정말 빨리 흘렀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젊다"고 말했다.

같은 날 크리스티 털링턴(50)도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의 패션쇼에 등장했다. 털링턴은 신디 크로퍼드, 나오미 캠벨, 클라우디아 시퍼 등과 더불어 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수퍼모델 전성시대'를 열었던 인물이다. 털링턴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20여 년 만에 패션쇼로 돌아온 이유를 밝혔다. 그는 "50세가 된 시점에 다시 무대에 서는 걸 고민하다가 '안 될 게 뭐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썼다.

뉴욕 패션위크 행사에서 중장년 모델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작년 2월 뉴욕 패션위크에 등장한 50대 이상 모델은 9명이었으나, 같은 해 9월엔 12명으로 늘었다. 유달리 중장년층 모델이 많이 등장한 올해 2월은 역대 최다 수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포스트는 전망했다. 뉴욕 패션위크는 매년 두 차례, 2월과 9월에 열린다.

패션쇼 프로듀서인 존 마르티네즈는 "과거에 활약했던 중장년 모델들은 젊은 모델들에겐 없는 장점을 갖고 있다"면서 "그들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패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과 연륜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중장년 모델들의 등장이 특정 인종, 신체 사이즈, 연령대의 모델들을 고집하던 과거와 달리 다양한 인종, 사이즈, 나이를 수용하려는 최근 패션계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모델 지망생들의 치열한 경쟁을 그린 리얼리티 쇼 '도전! 수퍼모델(America's Next Top Model)'에 출연했던 사진작가 니겔 베이커는 "요즘 패션쇼의 주요 관객들은 실제로 옷을 구매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이라며 "그런 (중장년대의) 잠재 고객에게 어필하기 위해 굳이 새파랗게 어린 모델들을 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