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기초수급자·고령자·장기연체자 등의 채무 원금을 탕감해주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금융기관 빚 원금을 최대 95% 감면해주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겠다고 한다. 빈곤층 소득을 늘려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던 정부에서 저소득 가계경제가 무너지자 응급 구조에 나서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장기 연체자에게 1인당 최대 1500만원까지 면제해주는 부채 사면령을 강행했다. 정부가 앞뒤 가리지 않고 전면적으로 빚탕감에 나서는 것은 그만큼 민생 경제가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최저임금을 2년 새 29%나 올리면서 서민층 일자리인 임시직과 일용직 일자리가 지난해에만 19만5000개 사라졌다. 지갑이 얇아진 서민들이 빚내기에 나서면서 가계빚이 더 불었다.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연 20% 이상 고금리에 시달리는 채무자가 2200만명을 넘었다. 국민 2~3명 중 1명꼴로 '위험한 빚쟁이'가 된 것이다. 이들 중 대부업체에까지 손을 벌린 사람이 412만명에 달한다. 작년에 폐업한 영세 자영업자가 100만명에 이르고, 자영업자의 금융부채는 이 정부 들어 14% 늘었다.

주로 봉급생활자들이 퇴직금을 부어 운영하는 편의점만 해도 4200곳이 문을 닫았다. 금융 위기 이후 10년 만의 최대다. 생활이 팍팍해진 서민들은 보험을 깼다. 그들이 보험 해지로 받은 환급금이 1년 새 2조원 가까이 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보험은 서민들의 노후 생활을 위한 최후 보루와도 같은 것이지만 당장의 생활고 앞에서 '노후'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서민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지표인 신용카드사 연체액도 급증 추세다. 작년 9월 말 기준 8개 카드사의 1개월 이상 연체액은 1조3787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7.3%나 증가했다.

기업 부도와 달리 민생 경제는 소리 없이 가라앉는다. 개개인의 비명은 정책 당국자들 귀에까지 들리지 않는다. 민생 경제를 살리는 왕도는 없다. 경제 전체에 활기가 돌게 분위기를 전환해야 한다. 지금 민생 경제가 무너지는데도 정책 수정을 고민하지 않고 미봉책으로 빚탕감을 해주겠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가면 나중에는 감당 못할 사태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