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기의 천재들|앤드루 산텔라 지음|김하현 옮김|어크로스|240쪽|1만3800원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 출판을 놓고 20년을 질질 끌었다. 다윈은 1838년 여름, 노트에 "모든 종은 변화한다"고 적었다. 우리가 아는 생물의 범주가 끊임없는 변이의 결과라고 확신하게 됐다. 9월경 다윈은 이러한 변화 뒤의 메커니즘, 즉 환경이 특정 돌연변이는 선호하는 반면 다른 돌연변이는 절멸시키는 방식을 노트에 설명해 놓았다. 그리고 이 도태 과정에 '자연선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상을 바꾸고 종교적 믿음을 산산조각 낼 발견이었다. 그러나 다윈은 이 문제에서 손을 뗐다. 자신의 발상을 출간할 방법을 전혀 알아보지 않았다. 다른 일 하며 바쁘게 지내느라 1859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유명해진 후 다윈은 아이디어를 책으로 발표할 때까지 그렇게 오랫동안 꾸물거린 것이 스스로도 당혹스럽다고 고백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미루기 선수였다. 교황 레오 10세는 그를 가리켜 "이 사람은 그 무엇도 끝내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지만 한 번도 실행에 옮긴 적이 없었다. 생전 완성한 그림은 스무 점뿐이었다. 대표작 '암굴의 성모'는 1483년 밀라노의 무염수태 성도회로부터 의뢰받았다. 다빈치는 "7개월 안에 그림을 완성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성도회가 그림을 제단에 건 것은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1508년이었다.

미루는 습관을 가진 이들을 위한 변명 같은 책이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미루는 버릇에도,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소개하며 '당장'과 '빨리빨리'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중 20%는 만성적으로 할 일을 미룬다. 신약성서는 참회처럼 중요한 일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훈계로 가득하지만 성인(聖人)조차 그를 따르는 데 애를 먹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께 순결을 달라고 기도하며 말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옵고."

엄격한 의미의 '미루기'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일을 지연하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미루는 걸까? 미국 심리학자 조셉 페라리는 "막상 일을 시작해 실패하는 것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인간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식"이라고 해석한다. 만성적으로 일을 미루는 사람은 무능한 인간으로 여겨지기보다 노력을 안 하는 인간으로 여겨지길 바란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무언가를 해내려면 적절한 기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일을 미룬다. 언젠가는 기분이 변할 것이기 때문에 미래야말로 행동에 나서기 더욱 적합한 때라고 확신한다.

저자는 미루는 사람들을 위한 수호성인을 찾아 뉴올리언스를 여행하고, 조지아주에 있는 미루기 장려 커뮤니티를 취재한다. 각종 사례와 이론 속에서 '우회(迂廻)'의 미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제1차 세계대전과 우울증으로부터 도망다니느라 '두이노의 비가' 완성에 10년이 걸린 릴케의 말이 실마리가 된다. "위대한 도약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보낸 시기에 발생하는 게 아닐까."

책은 자기 계발 신화에 빠진 자본주의 사회가 생각이 무르익을 여유마저 허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미루기와 거장의 업적 간의 상관관계를 정교하게 밝히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다수가 공감할 만한 주제를 재치와 유머로 버무려 가독성을 높였다.

"위대한 미루기 거장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구실을 생각해내는 능력이야말로 내 머리가 제공하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라는 점이었다.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건 무엇도 아닌 우리의 도피, 우리의 가벼운 망상과 자기기만이다."(231쪽) 원제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