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 문화부장

일본 세토내해(內海)의 섬 나오시마(直島)는 중금속 폐기물로 죽어가던 황무지가 '예술 섬'으로 거듭났다고 해서 한 해 100만 명이 찾는 명소다. 인구 3000명 오지 섬에 현대미술관이 3개나 되고, 모네부터 제임스 터렐, 잭슨 폴록, 데이비드 호크니 등 거작(巨作)이 즐비해 미술 애호가들 입이 딱 벌어진다. 눈을 호사시키는 미술관 건물은 일본 대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지었다.

나오시마의 진가는 그러나, 미술관이 아니라 옛 모습을 간직한 원마을 '혼마치(本町)'에 있다. 4년 전 이 섬에 갔을 때 가장 탄복한 곳도 동네 목욕탕이다. 낡아빠진 목욕탕을 젊은 예술가가 위트 넘치는 '작품'으로 변모시켰다. 수건은 물론 바가지, 수도꼭지 하나도 예술이고 욕탕 바닥엔 춘화가 그려져 있다. 마을의 신사, 기원, 소금창고 등 폐가 일곱 곳도 예술가들의 상상을 입고 '걸작'으로 태어났다.

나오시마를 다시 떠올린 건, 목포 근대역사문화지구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손혜원 의원 때문이다. 손 의원은 지난 1일 페이스북에 나오시마를 언급하며 "목포 구도심을 살려내겠다"고 했다. 2017년 10월에도 "게스트하우스 100개를 만들고 싶다. 나오시마 주민들처럼 잘살게 될 것"이라고 썼다.

한데 나오시마를 살려낸 일본 베네세 그룹의 '재생'과 '예술'에 대한 생각은 손 의원과는 많이 다르다. 70대의 후쿠타케 소이치로 회장은 기자에게 "황폐화된 땅에서 웃음을 잃은 노인들을 위해 천국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임원들 만류에도 30년간 1조원에 가까운 돈을 쏟아부은 건 "기업의 이윤은 문화에 쓰여야 한다. 돈 버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우리는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섬을 살려보자며 2000번 가까이 설명회를 연 열정에 감복한 주민이 230년 된 가옥을 기증한 것이 '이에(家)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젊은 작가들이 빈집을 캔버스 삼아 현대미술로 구현했고, 주민들은 예술이 된 마을의 도슨트 역할을 했다. 지자체도 나섰다. 3년에 한 번 열리는 세토우치 축제는 공공선(善)을 추구하는 기업과 주민, 지자체의 집단 지성이 빚어낸 결과다. 후쿠타케 회장은 이를 '나오시마 메소드'라고 불렀다.

그에 비하면 목포의 '손혜원 메소드'는 나오시마를 운운하기에 매우 옹색하다. 지성보다는 돈의 논리가 앞서고, 선의(善意)보다는 사심(私心)의 흔적이 짙다. 뭣보다 도시재생 혹은 치유의 주역이어야 할 원주민이 빠져 있다. 주민들에게 "잘살게 될 테니 집을 팔지 말라"던 손 의원은 "여기는 반드시 뜬다"며 외지인인 조카들과 보좌관, 지인들을 동원해 집들을 헐값에 사들였다. 근대문화거리에 작업실을 둔 목포의 한 화가는 "사람이 멀쩡히 살고 있는데도 손 의원 측이 찾아와 집을 팔라고 조르더라"며 혀를 찼다.

정부가 50조원을 들여 추진하는 도시재생사업의 핵심은 '누구를 위한 재생인가?'이다. 손혜원 논란에 목포가 북적인다지만, '건강한 자본'이 아니라 '수상한 자본'이 유입되면 투기 바람과 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게 수순이다. 손 의원 자신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가로수길, 경리단길이 그 몸살을 호되게 앓는 중이다. 국회의원으로서 목포를 사랑했다면, 복덕방 주인과 함께 문화재 투어를 하기 전에 원주민을 보호할 법안부터 만들었어야 하지 않을까.

올봄, 나오시마에선 다시 세토우치 예술축제가 열린다. 후쿠타케 회장은 말했다. "섬에 오면 주민들을 만나보라. 예술을 품은 뒤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꼭 물어봐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