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자신을 학자보다 ‘기억운동가(memory activist)’로 불러달라고 했다. 민족주의를 배타적으로 만드는 왜곡된 역사의식을 바로잡는 운동을 하겠다는 결의가 담겨 있다. 글쓰기를 넘어 전시회 등 여러 영역에서 활동하겠다고 했다.

임지현(60)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작년에 영화 '강철비'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주연배우 곽도원이 학생들을 상대로 "일제강점기 전쟁에 끌려가서 죽은 사람만 300만명"이라고 강의하는 대목이었다. 임 교수는 "미국의 역사가 존 다우어가 인용한 UN 공식 통계를 보면 태평양전쟁에 연루돼 죽은 한국인은 7만여 명 안팎"이라며 "일제 때문에 수백만명이 죽은 건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 얘기"라고 말했다. "영화에서 아무 근거가 없는 통계를 마치 사실인 양 집어넣은 거죠. 하지만 그걸 본 사람들이 '저건 허구야'라고 하겠습니까. 사실로 믿겠죠." 말과 글의 세상에서 민족주의라는 이름의 우상과 싸워온 학자가 '영상과 이미지의 전장(戰場)에 참전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다.

1년 뒤 임 교수의 첫 전투가 시작됐다. 지난달 24일부터 서울 을지로 센터원빌딩 KF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회 '이웃하지 않은 이웃'이다. 임 교수가 직접 자우녕·손이숙 작가와 함께 공동 기획했다. 전시의 부제는 "홀로코스트 '집시' 희생자와 타자의 초상".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처럼 아우슈비츠 등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학살당한 집시들의 생전을 찍은 사진을 전면에 내세운 전시다. 한국인의 일상에 잠복해 있던 우리 안의 파시즘을 공론화하고, 한국에서 신앙이나 다름없는 민족주의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했던 투사형 학자가 느닷없이 70여 년 전 학살당한 머나먼 민족의 사진을 보여준다? 전시가 열리기 전날 KF갤러리에서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임 교수를 만났다. 그는 "요즘 글로 써봐야 아무도 안 읽으니 이런 전시회를 여는 것"이라고 농담 섞인 말로 말문을 열었다.

―왜 하필 집시입니까. 왜 그들을 우리의 '이웃하지 않은 이웃'으로 명명한 건가요.

"홀로코스트 자체는 우리에게 익숙하죠. 특히 우리는 일제 식민 통치하에서 겪었던 민족의 고통을 홀로코스트와 은연중에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위안부 문제 같은 걸 국제사회에 설득력 있게 제기하기 위해 더 잘 알려진 홀로코스트 서사를 빌려오기도 하죠. 같은 종류의 폭력에 당한 희생자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유대인 홀로코스트는 잘 알아도 집시도 유대인과 함께 대량 학살당했단 건 잘 몰라요."

―그렇다면 집시의 사진을 보여주는 건 결국 그들을 통해 우리의 희생을 환기시키려는 의도입니까.

"반대입니다. 이 전시에 나온 집시들 사진을 찍은 사람이야말로 우리일 수 있단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임 교수가 말한 사진사는 독일 사진작가이자 민속학자 한스 벨첼(1902~ 1952)이다. 그는 1930년대 독일 데사우 지역에 거주하던 집시 공동체와 친해지게 되면서 그들의 일상을 렌즈에 담았다. 전시에 걸린 벨첼의 사진에는 유럽에서도 '비천한 민족' 취급받던 집시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그는 집시와 10년 넘게 어울리며 집시 언어까지 배울 정도로 깊은 애정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의 우정은 비극으로 끝난다. 독일인 벨첼은 나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지 않았고, 집시 친구들이 수용소로 끌려갈 때 침묵했다.

―벨첼이 우리일 수 있단 건 어떤 뜻입니까.

"벨첼의 사진 속에 담긴 이들은 다 수용소에 끌려가 죽었어요. 사진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죠. 사진 속 이들이 나치에 끌려갈 때 독일인인 벨첼을 찾아가 도와달라고 했죠. 하지만 벨첼은 먼 산만 바라보는 식으로 대했다고 해요. 그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라서 그랬던 게 아닙니다. 평범하고 자신과 다른 민족도 사랑할 줄 알았지만, 결국 어떤 역사의 흐름에 휩쓸려 가해자 편에 서게 된 거죠."

―우리 역시 나치 같은 가해자가 될 수 있단 경고로 들립니다.

"우리가 식민 지배의 희생자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 희생자 의식에만 너무 몰입해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아버지 세대는 홀로코스트 희생자였지만 그 아들 세대는 팔레스타인을 억압하는 가해자가 된 걸 보세요."

독일 사진가 한스 벨첼이 찍은 집시 가족.

―우리로 치면 작년에 사회문제가 됐던 예멘 난민 문제가 떠오르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그 일이 터졌을 때 인터넷상의 댓글을 보면 특히 젊은 층이 제 생각보다 훨씬 배타적이었어요. '우리도 힘든데, 왜 별 상관없는 예멘인들을 받아들여서 보조금도 주고 취업도 시켜주느냐'는 어조였죠. 일리 있는 반발이긴 합니다. 하지만 예멘 난민 같은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점점 더 많이 겪게 될 겁니다. UN 추산에 따르면 2050년이면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다른 민족이 1350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렇게 많은 이가 사회의 일부로 들어올 때도 예멘 난민처럼 배타적 태도를 고수하는 게 옳은 일일까요? 그리고 그렇게 배척당한 이들은 가만히 있을까요? 사람들이 그런 질문과 마주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벨첼의 사진 전시를 기획하게 된 겁니다."

스스로 밝힌 전시의 기획 의도처럼 임 교수는 보통의 한국인들이 불편해할 문제 제기도 서슴지 않는 역사학자다. '우리 안의 파시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같은 대표작에서는 보수·진보 양쪽 모두 공유하는 폭력성이나 배타성, 소수에 대한 억압 같은 문제를 가차 없이 비판해 양쪽 모두에서 공격받기도 했다. 좌우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은 학자적 입장은 그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무리한 억측일 수도 있지만 남다른 가계(家系)가 남다른 생각으로 이끌진 않았나요.

"글쎄요. 깊게 생각해본 적 없지만 그럴 수도 있겠죠. 기질적으로 반골이긴 합니다."

―조부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 건국훈장까지 받은 임원근(1899~ 1963) 선생이라고요.

"박헌영·김단야와 함께 조선공산당을 창당했던 3인방 중 하나셨죠. 나름 거물이셨는데, 전 꼬맹이 때는 조부가 그런 대단한 인물인지 몰랐어요. 1977년에 대학 가서 반체제 지하 서클에 가입하는 사고(?)를 쳐서 정보과 형사가 집에 들이닥쳤을 때 알게 됐죠. 그 시절에야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라기보단 '빨갱이'란 인식이 더 강했죠."

―조부의 그런 경력 때문에 탄압받은 건가요.

"조부도 조부지만, 큰아버지도 문제였죠. 임표라고 6·25전쟁 때 월북한 분이셨어요. 그것도 그때 알았어요. 집안 어른들이 쉬쉬하고 있다가 큰일이 터지니 '사실은…'이러면서 말씀해주신 거죠. 할아버지는 빨갱이에 큰아버지는 월북했고 나는 반체제 서클에 가입했으니 딱 연좌제에 걸려들기 좋았죠."

―어떻게 빠져나오게 된 건가요.

"운이 좋았습니다. 3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던 김재춘씨가 큰아버지와 고향에서 동문수학했고 저희 집안과도 알고 지내던 사이였어요. 그 양반이 절 슬그머니 빼주면서 '내가 임표 소식이 궁금해서 북으로 넘어가는 애들에게 임표 소식 좀 알아오라고 부탁할까 하다가 혹시라도 너네 집안에 피해갈까봐 참았다'고 말해주더군요. 그런 시대였습니다."

임 교수는 "이제는 말해도 되겠다"며 가족사를 털어놓다가도 "조부 시대의 지식인들 시야가 지금 우리 세대보다 넓었다. 그야말로 코스모폴리턴(세계시민)이었는데 지금은 그만 못하다"며 본연의 주제로 돌아왔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새 책 '기억전쟁'을 출간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일(反日) 감정과 반한(反韓) 감정은 서로 비슷하게 조작된 기억을 안고 전쟁을 벌이는 것과 비슷하단 얘길 하고 싶었어요. 일본도 전후에는 꾸준히 자신들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자폭탄을 맞은 피해자란 역사를 교묘히 강조해왔죠. 그러니 그런 희생자인 자신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고 전범 국가라고 공격하는 한국에 반감이 들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 '기억 조작 전쟁'은 교육뿐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사진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뤄집니다. 그러니 저도 글뿐 아니라 전시도 열면서 다양하게 참전해야죠. 돈만 있으면 영화를 만들었을 텐데 아쉽습니다(웃음)."

전시 기간은 오는 28일까지(일요일 휴관). 무료 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