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 음란행위, 崔 주장은 '사실'
朴의 강연회 성기노출 의혹은 '허위'

고은 시인.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최영미 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낸 고은(86) 시인이 1심에서 패소했다. 고 시인은 박진성 시인과 언론사를 상대로도 함께 소송을 냈으나 재판부는 박 시인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는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재판장 이상윤)는 15일 고 시인이 최 시인과 박 시인, 언론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공판에서 "박 시인은 고 시인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고 시인이 1992년 겨울~1994년 봄 사이 서울 종로 탑골공원 의자에 누워 음란행위를 했는지, △2008년 강연회에서 여성을 성추행하고 성기를 노출했는지 등이었다. 고 시인의 성추행 의혹은 최 시인의 폭로로 시작됐다. 2008년 일은 박 시인이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하며 언론에 보도됐다.

재판부는 1994년 탑골공원 사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최 시인이 직접 목격했다고 진술했고, 이를 뒷받침할 본인의 일기 등 소명자료를 제시하고 있다"며 "최 시인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돼 허위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와 별개로 언론사에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 재판부는 "고 시인이 저명한 원로 문인이고 문화예술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여러 문인들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하는 사항"이라며 "위법성 조각사유인 공공성이 인정되고, 최 시인의 진술을 믿을 수 있다는 점을 종합해보면 보도 내용이 진실하다고 판단할 상당할 이유가 있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2008년 강연회 사건은 허위라고 판단했다. 핵심 증인인 박 시인이 건강을 이유로 법정에 출석하지 않아 진술의 신빙성을 검증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다. 재판부는 "다른 증인들의 진술 등을 종합해보면 이 부분에 대해 고 시인 측 입장이 수긍할 만하다"고 했다. 이어 "박 시인 제보 내용은 공익성이 인정되지만, 제보 내용이 진실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위법성이 인정된다"며 "고 시인이 사회적으로 상당히 고통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과 박 시인이 블로그에 제보 글을 올린 경위 등을 보면 (고 시인 측의 청구금액) 1000만원을 전부 인용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최 시인은 지난 2017년 9월 계간지 ‘황해문화’ 겨울호에 게재한 시 ‘괴물’에서 원로 문인의 성추행 행적을 묘사했다. ‘괴물’은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 Me too /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이 시는 ‘미투(Me too)’ 운동이 확산되던 시기 뒤늦게 알려지며 파장이 커졌다. ‘En선생’은 고 시인으로 지목됐고, 최 시인은 이후 한 방송 뉴스에 출연해 '원로 시인'의 성추행이 상습적이었다고 주장했다. 한 일간지에 보낸 글에서는 ‘그가 술집에서 바지 지퍼를 열고 신체 특정 부위를 만져달라고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들어있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고 시인은 지난 3월 영국 출판사를 통해 "나 자신과 아내에게 부끄러울 일은 하지 않았다"며 "일부에서 제기한 상습적인 추행 의혹을 단호히 부인한다"고 했다.

그러자 박 시인이 나섰다. 박 시인은 블로그를 통해 "저는 추악한 성범죄 현장의 목격자입니다. 그리고 방관자입니다. 지난날의 저 자신을 반성하고 증언한다"며 최 시인의 말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폭로가 이어지자 고 시인의 작품 대부분이 교과서에서 삭제됐다. 서울시는 서울도서관에 있는 '만인의 방'을 철거했다. ‘만인의 방’은 고 시인의 삶과 문학을 조명한 공간이다. 고 시인은 한국작가회의 상임고문직도 사퇴했고, 이 회의에서 탈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