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의회가 내놓은 국경장벽 건설 예산안에 서명하는 동시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예정이라고 백악관이 14일(현지 시각) 밝혔다. 남부 국경 장벽 건설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하며 법적 조치를 예고해 정국 혼란이 고조되고 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예산안에 서명할 것이며, 국경에서의 국가 안보와 인도주의적 위기를 막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포함한 다른 행정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샌더스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장벽을 건설해서 국경을 보호하고 미국을 안전하게 만들겠다는 약속을 다시 한번 이행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여당인 공화당과 야당 민주당은 지난 11일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에 13억7500만달러 자금을 배정한 예산안에 잠정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57억달러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2월 13일 백악관에서 진행한 콜롬비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셧다운 재발 사태를 막기 위해 예산안 서명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부터 역대 최장 기간인 35일 간 이어진 셧다운으로 미 경제가 악화되고 지지율이 하락하는 등 진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셧다운 사태를 막으려면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5일 자정까지 예산안에 서명해야 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장벽 건설을 강행할 것이란 건 이미 예견됐다. 의회 합의안이 나온 후 한 백악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권한을 이용해 다른 자금을 장벽 건설에 사용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했다. 백악관은 법적인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인단을 꾸리는 등 이 방안을 적극 추진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 결정에 강력 반발했다. 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면 법적 소송을 강행하겠다고 경고했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와 헌법에 명시된 권력분립을 교묘히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멕시코 국경에는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필요한 어떤 위기도 없다"며 "이는 우리에게 인도주의적 도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매우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했다.

공화당은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공화당 소속의 수잔 콜린스 상원 의원은 성명을 내고 "이 목적(장벽 건설 자금)을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건 대통령의 실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미치 맥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백악관이 성명을 내기 전 트럼프 대통령이 예산안에 서명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