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던 지난 9일 새벽 3시 30분, 휴대폰에는 서울 종각 주변의 기온이 영하 6도로 표시됐다. 그러나 빌딩 사이로 몰아치는 칼바람은 체감온도를 영하 10도 이하로 뚝 떨어뜨렸다. 탄경(55·사진) 스님은 작은 손수레를 끌고 바람 속으로 걸어나갔다. 스님과 네팔인 자원봉사자 등 4명이 밀고 끄는 손수레는 조계사 부근 오피스텔에서 출발해 광화문 지하도로 향했다. 인적 없는 거리엔 손수레 바퀴 소리가 요란했다. 수레에는 컵라면과 주스, 초코파이를 담은 비닐봉지 150개가 빼곡히 들어 있었다. 매주 토요일 새벽 광화문·종로 일대 노숙인을 위한 새벽 간식 배달이다.

'첫 손님'은 광화문우체국 부근에서 만났다. ATM 부스에서 추위를 피하던 50대 노숙인이 바퀴 소리를 듣고 먼저 나왔다. 그에게 봉지 하나를 건네고 도착한 광화문 지하도. 10여 명이 종이 상자를 바람막이 삼아 누워 있었다. 스님과 봉사자들은 그들 머리맡에 봉지를 놓았다. 스님은 그중 한 명에게 침낭을 가져다 덮어주었다. "지난번 만났을 때 침낭을 부탁했던 분"이라고 했다.

일행은 종각역으로 향했다. 종각역 입구엔 신문 더미가 쌓여 있었다. 그 위에도 봉지를 서너 개 놓았다. "새벽에 신문 배달하는 분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간식 배달은 청계천, 을지로입구역을 거쳐 탑골공원으로 이어졌다. 낮엔 '투명인간'처럼 잘 보이지 않던 노숙인들이 곳곳에 있었다. 지하도 셔터 앞, 청계천변 건물 현관 앞, 탑골공원 정문 앞에도 잠자리가 펼쳐져 있었다. 탑골공원 뒤 고물상에선 폐지 수집이 한창이었다. 스님은 종로 일대 청소원용으로 20여 개, 고물상 주인에게도 20여 봉지를 맡겼다. 인근 골목 노래방에선 취객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탑골공원을 끝으로 순례를 마치고 오피스텔로 돌아온 시각은 새벽 4시 48분이었다.

지난 9일 새벽, 탄경(앞) 스님과 네팔인 봉사자들이 노숙인에게 간식을 전하기 위해 종로를 걷고 있다.

새벽 노숙인 간식 배달은 2016년 5월 시작했다. 탄경 스님은 불교 사회단체 '다나'의 대표다. 고대 인도의 언어인 팔리어로 '보시'라는 뜻의 '단나'에서 따온 '다나'는 '다함께 나누는 세상' '모두가 나[我]'란 뜻도 담았다. 지난 2005년 파키스탄 지진 때 현지 봉사 경험이 바탕이 됐다. 당시 보름 정도 현지에서 눈코 뜰 새 없이 지냈는데 "출가 이후 딴생각 없이 몰두하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이때 인연으로 귀국 후에도 외국인 노동자를 돕게 됐다. 노숙인 간식 봉사를 시작한 것은 4년 전 부처님오신날 즈음 서울역 인근 노숙인들에게 음식을 나누다 들은 한마디의 충격 때문이었다. "음식을 받은 분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더군요. 승복 입고 삭발한 저를 보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이야기하대요. 그동안 우리 불교는 이들을 위해 뭘 했나 싶었습니다."

스님은 한 달에 1주일 이상 전국의 인연 있는 사찰을 돌며 탁발해 비용을 마련한다. 새벽 시간을 택한 것은 노숙인들이 5시 무렵이면 지하도를 비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에겐 '새벽 예불'인 셈이기도 하다. 얼마 전부터는 네팔인 공동체가 배달을 돕고 있다. 평소 스님이 네팔과 네팔인들에게 고마운 일을 많이 해서다. 간식을 나눠줄 때 스님은 목탁을 치거나 염불은 물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낮에 만나면 그분들이 다 저를 알아보세요(웃음)."

스님은 지난해 12월 조계종 포교대상 원력상을 받았다. 그의 꿈은 간식보다는 뜨끈한 국물을 대접하는 것이다. "선방(禪房)에서 참선에 매진하는 스님들도 계시지만 저는 이분들에게 간식 나눠드릴 때가 제일 행복하고 아무 잡념이 없습니다." 그의 표정이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