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하락 여파로 집주인들이 전세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역(逆)전세난'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울산·거제 등 일부 지역에서 시작된 보증금 반환 불능 사태가 수도권까지 확산됐다. 서울 지역 분양 아파트 입주 예정자 상당수가 현재 사는 아파트의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새집의 잔금을 치르지 못한 채 애태우고 있다고 한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려면 떨어진 전셋값에 자기 돈을 보태야 하는데, 지난해 정부가 '9·13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전세 대출을 대폭 규제해 자금 마련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에다 정부의 고강도 규제가 맞물리면서 전국 전셋값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17개 광역시·도 중 11곳의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이 2년 사이 2.7% 하락했다. 조선업 불황 직격탄을 맞은 울산과 경남은 10% 이상 떨어졌고 경북·충남·세종시 등도 5% 이상 내렸다. 지난해 전세 보증기관들이 집주인 대신 전세금을 물어준 금액이 재작년보다 4배 이상 늘었다. 아파트 거래가 급감하는 '거래 절벽'이 지속되면 역전세난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나중엔 집 판 금액이 보증금에 못 미치는 '깡통 전세'가 속출할 수 있다.

전셋값 하락은 서민층 주거비 부담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다만 하락 속도가 문제다. 지나치게 빠른 착륙은 사고를 부른다. '깡통 전세'와 가계 부실화 등의 부작용은 자칫 국가 경제 전체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집주인이 돌려줘야 할 전세 보증금 부채가 750조원 규모에 달한다. 전셋값이 20%만 떨어져도 53%의 집주인은 자기 돈으로 보증금을 반환할 능력이 안 돼 빚을 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와 있다. 가계부채를 더욱 부풀려 내수 위축과 경기 침체로 이어지게 된다.

최악의 사태를 막으려면 주택 거래에 숨통을 터줘야 한다. 경제에 백해무익한 부동산 투기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하지만 집주인들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한 용도로는 신규 주택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자금 여력이 없는 집주인이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으로 집을 팔 경우 양도소득세 부담을 완화해 주는 대책도 검토해볼 만하다. 집값과 전셋값은 더 내려가야 하지만 급격한 경착륙은 막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러기 위해선 일반 주택 거래는 이루어질 수 있도록 숨통을 터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