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시티팝의 원조 격인 노래‘샴푸의 요정’이 수록돼 있는 빛과 소금의 1집 앨범.

"옛날 노래가 이렇게 세련됐었나요? 1990년에 태어나지도 않았었는데 그 시절 명동 거리가 머릿속에 그려져요."

대학생 이지민(20)씨가 요즘 즐겨 듣는 노래 목록의 첫째 곡은 1990년 발표된 빛과 소금의 '샴푸의 요정'이다.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이주원의 '아껴둔 사랑을 위해', 김현철의 '왜 그래'도 자주 듣는다. 모두 이씨가 태어나기 전 노래다. 이씨는 "2019년 첫째로 좋아하게 된 가수가 빛과 소금"이라며 "요즘 나온 노래라고 해도 믿을 법한 노래가 많더라"고 했다.

2030 사이에 시티팝(city-pop) 열풍이 불고 있다. '도시에서 흥하는 음악'을 일컫는 시티팝은 1970~1980년대 일본에서 떠오른 팝의 한 장르다. 청량한 느낌의 전자 사운드로 낭만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인기를 끌었다. 30년 만에 유행이 돌아온 것이다.

유튜브에 한국 시티팝을 검색하면 우리나라 노래만 엮은 동영상 수백 개가 뜬다. 분위기가 비슷한 노래들을 이어붙여 1시간 안팎으로 만들어 놓은 시티팝 믹스(mix) 동영상이 대부분이다. 주 구독자는 20대와 30대다.

우리나라 시티팝 노래들을 엮어 방송하는 유튜버 서울시티비트(Seoul City BEAT)는 최근 윤상, 김현철 등 1990년대 가수들의 노래를 믹스한 동영상으로 조회수 10만 회를 기록했다. 또 다른 시티팝 유튜버 홈어론보이(HomeAloneBoy)는 구독자 수가 1만명에 이른다. 시티팝 믹스만 찾아 듣는다는 회사원 권주안(34)씨는 "추운 버스 안에서 김 서린 창밖을 바라보며 들어야 제맛"이라며 "지겨운 아이돌 노래에서 벗어날 수 있고 추억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라고 했다.

옛 노래와 가수를 발굴해내는 재미도 느낀다. 회사원 최영주(26)씨는 "그룹 이름이 '빛과 소금'이라 CCM 가수인 줄 알았는데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랐다"며 "오혁, 크러쉬 같은 요즘 인기 있는 가수들이 낸 신곡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세련됐다"고 말했다.

비슷비슷한 요즘 노래를 피해 도피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강태규 대중음악 평론가는 "획일적인 음악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의 욕구가 발현된 것"이라며 "노래를 만들고 부른 사람들이 지금은 50대가 됐지만 그들이 노래를 만든 때였던 20대 때의 감성에 지금 20대가 호응하고 공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