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관악캠퍼스. 오세정 신임 총장의 취임식이 열리는 문화관 건물 앞에 서울대 기계·전기를 관리하는 근로자 30여명이 모였다. 민노총 소속인 이들은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지난 7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행정관, 공과대학 기계실을 점거하고 건물 난방을 중단했다. 노조원들은 이날 추가로 법학관, 공학관 등 20여개 건물의 난방 장치 가동을 하지 않았다. 노조원들은 취임식장으로 향하는 오 총장을 향해 '총장님 취임식은 봐 준다, 더 이상 양보 없다'는 피켓을 들었다.

파업에 나선 이들은 서울대 법인 소속 무기계약직 직원들이다. 원래 기계·전기 관리 용역회사 소속 비정규직이었지만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2018년 2월 서울대 법인 직원이 됐다. 노조 측은 "시설 관리 직원은 성과급·상여금·명절휴가비가 없고, 복지 포인트도 행정·사무직의 30% 수준인 30만원"이라며 기존 서울대 행정·사무직 직원들과 같은 대우를 요구하고 있다. 또 요구가 수용될 때까지 건물 난방 가동 중단 등 무기한 파업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8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제1열람실에서 겨울 외투를 입은 한 학생이 모자까지 눌러쓰고 공부하고 있다. 전날부터 파업에 나선 민노총 산하 서울대 기계·전기 노조가 이틀째 교내 일부 건물의 난방을 중지시키면서 이날 도서관을 찾은 학생은 평소의 10분의 1로 줄었다.

이날 서울대 건물 곳곳에는 '난방 운영이 중단됐으니 파업 종료 때까지 양해해달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따르면 평소 25도 내외로 유지되는 도서관 실내 온도는 노조의 난방 중단에 따라 8일 16~17도로 떨어졌다. 개강 전이지만 대학원생 등 학교에 남아 공부하는 사람이 적지 않고 이달에는 변리사·공인회계사 1차 시험이, 다음 달에는 행정고시 1차 시험이 예정돼 있어 최근까지도 도서관 이용객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 도서관을 찾은 학생은 평소의 10분의 1수준이었다. 학생들은 두꺼운 패딩 외투를 입고 핫팩을 흔들며 공부했다. 수면 양말, 목도리 등의 방한용품을 갖춘 학생도 있었다.

오는 16일 변리사 시험에 응시할 예정인 서울대생 문모(25)씨는 중앙도서관을 찾았다가 추워서 나왔다. 문씨는 "오래 준비한 시험이 일주일 남았는데 당황스럽다"며 "시험이 코앞인데 익숙한 열람실을 떠나 공부할 곳을 새로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서이종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은 "학생들이 밤낮으로 공부하는 도서관만은 난방을 중단하지 말아 달라고 노조에 재차 요청했지만 아직도 묵묵부답"이라며 "학생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는 만큼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노조에)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기계실 점거한 서울대 노조원들 - 8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시설관리직 직원들이 행정관 기계실을 점거하고 있다.

시설 근로자 파업으로 서울대 연구실에도 비상이 걸렸다. 노조원들이 전기 공급까지 중단할 수 있다는 소식에 연구 자료를 미리 백업(back up)하기도 했다. 공대 대학원생 김영서(23)씨는 "전기가 안 들어오면 연구는 아예 할 수 없고 기존 연구 자료로 못 쓸 수 있다"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료를 백업하는 중"이라고 했다. 공대 대학원생 김수현(23)씨는 "평소 늦게까지 연구를 하다 연구실에서 자기도 하는데 어제는 난방이 중단된 것도 모르고 잠을 자다 추워서 깼다"고 말했다.

노조의 난방 중단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지만 노조는 이날도 "난방을 강제로 끈 것이 아니라 파업에 따라 (난방 장치 가동) 업무를 중단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학 측이 성실히 협상에 임하지 않을 경우 전기 공급 중단도 고려하겠다"고 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청소·경비·소방 관련 시설관리직 근로자도 파업에 합류할 예정"이라고 했다. 파업 근로자들의 '대외 홍보 업무'는 이들이 소속된 상급 단체인 민노총 서울일반노조가 맡고 있다. '학생들의 불편이 크지 않으냐'는 질문에 민노총 서울일반노조 관계자는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난방이 중단된 7일 노조위원장을 만나 학생들이 공부하는 도서관에 한해 점거를 풀고 난방을 재개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노조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서울대 측은 "교육·연구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