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 글지기 대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조카들이 세배(歲拜)에 덕담(德談)을 얹는다. 저희가 들을 소리를 하는 것도 무엇하려니와, 지은 게 없는데 들어올 복이 있으려고. 처가 동기(同氣)끼리 인사 주고받을 때도 그랬다. 쑥스럽고 진부하다 싶어 그냥 “건강하세요” 해놓고는 아차! 형용사는 명령형(행복해라, 행복하시게, 행복하십시오…)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워낙 맛깔나고 아리따워서 그럴까. 우리말 형용사에 아무 어미(語尾)나 붙였다간 버리기 십상이다. 청유형(請誘形)도 마찬가지. '조용하자' '조용하세' '조용합시다' 모두 잘못된 말이다. 명령형과 함께 제법 스스럼없이 입에 글에 오르내리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어법도 법(法)인걸.

'日 사실상 이민 국가 선언… 일할 사람 없자 극약 처방.' 일본이 외국인 노동자를 잔뜩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뉴스 제목이다. 이 '없자'의 '자'는 어떤 일의 원인 또는 동기가 되었거나, 어떤 일이 뒤 이어 일어남을 나타내는 어미. 동사에만 붙는다. 그런데 '없다'는 형용사이니 '일할 사람 없어지자(줄어들자)'가 맞는 표현이다.

형용사의 낯가림은 어미뿐 아니라 일부 보조용언과도 관련이 있다. '눈앞 성과에 급급하지 말고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을 찾아야.' 여기서 '~지 말고' 역시 동사와 어울리는 어구(語句). '급급(汲汲)하다'는 형용사인데 동사로 여기고 잘못 썼음 직하다('소홀하다'도 흔히 동사로 착각한다). '매달리지 말고' '급급해하지 말고'처럼 동사로 바꿔 써야 옳다. '나는 깨끗하고 싶은데 세상이 가만두지 않는다'에서 '~고 싶다'도 동사와 궁합이 맞으니 '깨끗이 살고 싶은데' 하면 괜찮겠다.

느지막이 들춰본 설 운세(運勢)에서 이런 글귀를 만났다. ‘자신에겐 엄격하되 상대에겐 관대하라.’ 옳은 말씀인데, 형용사 ‘관대하다’에 명령형을 썼으니 어법은 틀리는구려. 역술가가 아무러면… 하는 머릿속으로 대거리가 들리는 듯했다. 댁이나 ‘건강하세요’ 하지 마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