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고민을 해결했으니 야구공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자는 구도자(求道者)의 짐을 벗은 듯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올해 불혹(不惑)의 나이가 된 김병현(40). 세상은 그를 'BK(Born to K·타고난 삼진 투수)'라고 불렀다. 땅에서 솟구치는 '업슛(Upshoot)', 크게 휘는 '프리스비(Frisbee·원반) 슬라이더'에 내로라하는 메이저리그 강타자들의 방망이가 헛돌던 때가 있었다.

현역 시절 마지막 투구 - 이 장면이‘BK’김병현의 현역 시절 마지막 모습이 됐다. 최근 호주프로야구 멜버른 에이시스 소속으로 투구하는 김병현. 그는 본지 인터뷰에서“길었던 고민의 답을 호주에서 찾았다. 이제 야구공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한국 무대를 거친 김병현은 최근까지 호주프로야구(ABL) 멜버른 에이시스 소속으로 뛰었다. 본지는 호주에서 돌아온 그와 29일 단독 인터뷰를 했다. 김병현은 "이제 야구를 그만둬도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은퇴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18년의 고민, 답을 찾았다

김병현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인 2001년부터 3시즌 간 최고의 투구를 했다. 2001년엔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꼈다. 하지만 커리어 정점에 올라서고도 만족하지 못했다. "사실 2000년부터 제 구위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1이닝씩 막아내긴 했지만 타자를 압도하진 못했죠. 주변에서 잘한다고 칭찬해도 전 기쁘지 않았습니다."

김병현은 선발로 보직을 바꾸고, 여러 팀을 전전하며 스스로 만족할 만한 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마이너리그는 물론 미국 독립리그, 일본, 도미니카 등 무대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마운드에서 타자를 상대해야 하는데 나 스스로와 싸우기 바빴다. 자연히 그만둘 시기도 놓쳤다"고 했다.

해답을 찾은 곳은 호주였다. 평균 구속은 80마일(약 129㎞) 정도였지만, 볼 회전수는 90마일 공의 수준이었다 한다. "예전보다 구속은 떨어졌지만 공 움직임은 20대 초반 때와 비슷했어요. '드디어 이 공을 다시 던져보는구나'하는 짜릿함을 느꼈습니다." 김병현의 호주리그 성적은 9경기(9와 3분의 2이닝) 1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0.93. 실제로 그의 공을 제대로 공략한 타자는 거의 없었다.

김병현은 "수년간 노력한 체질 바꾸기의 결과"라고 했다. 그는 2016년부터 식습관을 완전히 바꿨다. 평소 즐겨 먹던 밀가루와 탄산음료, 술을 모두 끊었다. 93㎏였던 몸무게가 2년 만에 80㎏으로 줄었다. 어린 나이에 혼자 외국 생활을 하면서 무너졌던 생활·식습관을 다시 세우면서 구위도 살아났다는 것이다.

"난 저니맨, 은퇴식은 사치"

더 던지고 싶은 욕심은 없을까. 김병현은 "지금까지 던진 건 내가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원하던 모습을 다시 봤으니 이제 물러날 때가 됐다"고 했다. 야구 선수로서 본인의 점수를 매겨 달라고 하자 "좋은 점수는 못 준다"고 잘라 말했다. 완벽주의자다운 답이었다.

김병현은 가장 기억에 남는 지도자로 KIA 시절 선동열 감독을 꼽았다. "어릴 때부터 우상이었죠. 감독님과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고…감히 먼저 말도 못 붙였습니다(웃음)." 다른 '레전드'처럼 성대한 은퇴식을 꿈꾸진 않을까. "전혀 그런 생각 없습니다. 저는 '저니맨(여러 팀을 옮겨다니는 선수)'이에요. 만약 KIA(고향팀)에서 은퇴식을 제안했어도 거절했을 겁니다."

김병현이 지난 29일 본지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했다. 팬들에 대한 감사를 손가락 하트에 담았다.

부업으로 음식점·식자재 사업을 하는 김병현은 기회가 된다면 해설위원이나 지도자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어느 정도 야구를 익히고 나만의 루틴을 다지고 미국에 갔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라며 "내가 현역 시절 못했던 부분을 젊은 선수들에게 알려주는 건 큰 보람일 것 같다"고 말했다.

세 아이의 아빠인 그는 "지금은 아이들이 내 삶의 이유다. 야구공을 놓더라도 또 다른 인생을 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오로지 야구만 바라봤던 남자는 그렇게 구도자의 삶을 청산하고 세상 밖으로 한 발 내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