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뭐 중요해요. 실력이 어떠냐가 중요하지."

지난 15일 저녁 독일 베를린 시내의 한 초등학교 체육관. 에바 셸데(80)씨가 열 살 아이 옆에 서서 몸을 풀었다. 낮엔 학생들의 수업 공간이지만, 밤엔 동네 주민 200여명이 이용하는 펜싱 클럽이 된다. 셸데씨는 여고생 시절 이 클럽에서 플뢰레 펜싱을 처음 배웠다. 64년째 펜싱을 즐기면서 독일 대표 시니어 선수로도 활약한다. 요즘도 매주 세 번 클럽에 나와 두 시간씩 검을 들고 땀을 흘린다. 운동으로 다져진 허벅지가 벽돌처럼 단단했다.

그의 훈련 파트너는 다니엘(16)-엘리자(13) 블뢱 남매다. 펜싱 검을 맞대면 실력이 막상막하다. 셸데씨는 그간 쌓아온 노련함으로 남매의 민첩한 움직임을 상대한다. 그는 손주뻘 회원들과 운동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실력 비슷한 사람끼리 운동하는 게 편하다"면서 "여태껏 아파서 병원 간 게 손에 꼽을 정도다. 내겐 나이 먹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고 답했다. 펜싱 4년 차인 엘리자는 "제가 보완할 점을 대련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려주셔서 실력 향상에 무척 도움이 된다"고 맞장구를 쳤다.

나이의 벽 허문 독일의 생활체육

독일도 만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 넘는 초고령 사회다. 한국과 차이가 있다면 운동을 하루 세 끼 챙겨 먹듯 꾸준히 하고, 나이엔 편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인만 모이는 탑골 공원처럼 운동도 노인끼리 하는 한국 분위기와 전혀 달랐다.

셸데씨가 있는 펜싱 클럽은 학교 체육관을 활용하는 까닭에 한 달 회원비가 34유로(약 4만3000원)이다. 펜싱 실력을 기준으로 파트너를 맺기 때문에 20대가 50대랑 맞붙고, 10대와 80대가 스스럼없이 훈련한다.

독일 베를린의 그뤼네발트 펜싱 클럽 회원들은 저녁마다 초등학교 체육관에 모여 운동한다. 올해 여든 살 에바 셸데(왼쪽)씨는 지난 15일 훈련에서 열여섯 소년 다니엘 블뢱과 플뢰레 대결을 벌였다.

이 클럽의 회장인 마리안 몰덴하우어(30)씨는 "체구가 작은 미취학 아동만 따로 배우고, 다른 회원들은 함께 어울린다"면서 "건강은 물론 서로 다른 세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 역시 23년 전부터 셸데씨와 검을 맞댔다.

어딜 가나 그렇다. 올해로 설립 140년 된 뮌헨의 공공체육시설 MTV는 1년에 180유로(약 23만원·성인 기준)만 내면 농구·배구·배드민턴·유도·테니스 등 16가지 종류의 스포츠를 맘껏 할 수 있다. 반편성 기준은 오직 실력이다.

가령 배구의 경우 성인 여자반 2개, 남자반 5개가 운영 중인데 배구 입문 연차와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반 배정을 해준다. MTV 직원은 "아직 점프력이 좋은 70대 회원이 30대와 한팀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뮌헨시가 무료로 진행하는 기계 체조 교실엔 20대 대학생부터 백발 할머니까지 참여한다.

◇"운동이 최고의 보약입니다"

독일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생활체육 선진국인 이유는 대문 밖을 나서면 도처에 운동 시설이 있고, 누구나 참여하도록 독려하기 때문이다. 독일올림픽체육연맹 조사에 따르면 독일 전역엔 스포츠클럽 9만여개에 회원 약 2400만명이 있다. 국민(약 8300만명) 셋 중 한 명꼴로 동네 클럽 회원인 셈이다. 자발적으로 축구·농구 등을 하는 경우를 포함하면 인구 70%가 생활체육을 즐기는 것으로 파악된다.

제2차 세계 대전까지만 해도 독일인에게 스포츠는 경쟁과 성공을 의미했다. 노약자나 여성, 장애인은 물론 운동 신경이 뒤처지는 성인 남성조차 스포츠에서 배제시켰다.

패전 후엔 스포츠가 친교의 무대로 변신했다. 독일 정부는 1950년대 '스포츠 제2의 길'을 선언하고 엘리트 선수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스포츠 정책을 펼쳤다. '운동이 최고의 보약', '스포츠가 독일을 풍요롭게 한다' 등의 슬로건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베를린 장벽을 허물듯, 독일은 스포츠에서 나이와 편견의 벽을 허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