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배상과 일본 초계기의 한국 군함 근접 비행을 놓고 한·일 정부가 충돌하는 가운데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28일 비공개로 정경두 국방장관, 강경화 외교장관을 잇달아 만났다. 미국과 동맹 관계인 한·일 갈등으로 '한·미·일(韓美日) 3각(角) 협력' 체제에 균열이 우려되자 미국이 뒤늦게 '중재자'로 나섰다는 관측이다.

◇'3각 안보 협력' 흔들리자 美 나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정경두 장관과 비공개 면담을 가진 후 걸어 나오고 있다.

해리스 대사는 이날 오후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를 언론에 예고 없이 비공개 방문해 약 1시간 20분 동안 정경두 국방장관을 면담했다. 지난달 20일 한·일 '레이더 논란'이 불거진 이후 이뤄진 첫 공식 만남이다.

해리스 대사가 제안한 이날 면담에선 한·미 방위비 협상에 관한 의견 교환도 있었지만 '한·일 초계기 갈등'에 상당한 시간이 할애된 것으로 전해졌다. 군 소식통은 "정 장관은 일본 주장의 부당함과 우리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해리스 대사는 양국 갈등에 우려를 표했다"고 했다. 해리스 대사는 이후 외교부 청사를 찾아 강경화 장관도 면담했다. 외교 소식통은 "최근 미국이 한·일에 '미디어 여론전'만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지만 양국 다 충돌로 갔다"며 해리스가 움직인 배경을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간 미국의 직접적 이해와 무관한 한·일 외교 현안에는 개입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왔다. '아시아 중시 전략'을 편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북한에 대응해 '한·미·일 3각 협력'을 강조한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견지하면서 한·일 갈등에 거리를 둬 왔다.

하지만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벌어진 한·일 갈등이 3국 안보 협력 체제는 물론 한·미·일 대북(對北) 공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갈등의 중재자'로 나섰다는 분석이다.

◇美 중재 외교에도 갈등 이어질 듯

외교가에선 미국의 중재에도 우리 정부가 쉽게 입장을 바꾸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일제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 일본 정부가 지난 9일 요청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상 외교적 협의'에 대해 우리 정부는 사실상 거부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아직 청와대 결정이 남긴 했지만, 일본 측이 2011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우리 정부의 '외교적 협의' 요청을 거부한 만큼 우리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곧 일본 측에 회신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은 이날 정기국회 연설에서 "일본 고유 영토인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에 대한 일본의 주장을 확실히 전달해 끈기 있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우리 외교부는 "강력 항의하며 일본 정부는 부당한 주장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맞대응했다.

이날 국방부는 오는 4월 예정된 서태평양해군 심포지엄(WPNS) 실무회의에서 일본 초계기 근접 비행 문제를 거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그 회의에서 논의가 있을 것"이라며 "국제적 규범·관례를 결정하는 것이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외교 소식통은 "문재인 정부 역시 아베 내각처럼 강경한 대응이 국내 정치에 도움이 되는 상황이어서 방향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총리실 주도 강제징용 TF도 3개월째 청와대 눈치만 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