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낮 도쿄 긴자의 '카페 파울리스타'엔 젊은이들이 북적였다. 샹들리에 아래 주홍빛 가죽 의자에 앉은 이들은 100년 전 맛을 재현한 '올드 커피'를 홀짝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정장 조끼를 갖춰 입은 바리스타는 "복고풍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다"고 했다.

1911년 문을 연 카페 파울리스타는 현존하는 도쿄의 카페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김동인이 문예지 '창조' 창간을 논의하기 위해 차를 마시고 커피를 즐겨 사간 곳도 파울리스타다. '문단 30년의 자취'(1948)에서 김동인은 1918년 12월 25일 밤 "요한과 나는 파우리스타에 들러서 차를 한 잔씩 마시고 커피시럽을 한 병 사가지고 함께 내 하숙으로 온 것이었다"고 회고한다.

현존하는 도쿄 카페 중 가장 오래된‘카페 파울리스타’의 내부.

카페 파울리스타는 아사히신문, 덴츠(광고회사 겸 통신사), 지지신보(時事新報) 등의 언론사와 가까운 데 위치한 덕분에 기자들과 작가들의 아지트로 이름을 알렸다. 백색 대리석으로 만든 테이블에 정장풍 유니폼을 입은 10대 소년들이 5전짜리 커피를 나르는 이국적인 분위기도 도쿄 문화인들을 사로잡았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기쿠치칸, 구메 마사오, 시시 분로쿠 등의 글쟁이들이 주요 단골이었다는 게 이 카페의 자랑이다. 구보타 만타로가 "우리가 긴자에 나온다는 것은 곧 그 가게(카페 파울리스타)에서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라도 시간을 죽이는 걸 뜻했다"고 했을 정도다. 이들의 대화를 귀동냥하려는 젊은 문학청년들도 몰려들었다. 김동인 등 도쿄에서 유학하던 조선 문학도들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김동인과 주요한은 "파우리스타의 커피시럽을 진하게 타서 마시면서" 1918년 크리스마스 밤에 열린 동경 유학생 집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당시 집회에서 유학생들은 3·1운동을 진행할 위원을 선출하고 독립선언서 작성을 논의한다. "처음에는 화제가 그 방면으로 배회하였었지만 요한과 내가 마주 앉으면 언제든 이야기의 종국은 '문학담'으로 되어 버렸다. '정치 운동은 그 방면 사람에게 맡기고 우리는 문학으로―.' (중략) 그리고 문학운동을 일으키기 위하여 동인제(同人制)로 문학잡지를 하나 시작하자는 데까지 우리의 이야기는 진전되었다."

다방의 문예 부흥 역할을 연구해온 신범순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전시 '커피사회'에서 김동인을 "근대 문인 중 최초의 커피 애호가"라고 표현했다. 그는 "최초의 근대적인 문학잡지 제목을 두고 커피를 마시며 밤새 논의하여 '창조'를 만들어낸 것"이라면서 "'창조'에는 밤을 새우며 문학의 불꽃을 만들어내려는 사유가 있고, 그 사유를 계속 깨어 있게 하는 커피의 맛과 향기가 깃들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