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 "한·미 간 이견이 아주 큰 상황"이라고 했다. 미 정부 관계자가 우리 측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돈을 더 내든지, (주한 미군을) 우리가 빼든지'라는 입장이 강경하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방위비 협상은 늘 난항이었지만 물밑에서 조용히 이견을 조율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엔 협상 과정을 사실상 공개하고 여론전을 벌이면서 불협화음이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있다. 트럼프·김정은 회담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한·미가 긴밀하게 밀착해야 할 시점에 '돈 문제'로 동맹 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지난해 주한 미군 주둔 비용의 절반인 9602억원을 분담했다. 한·미는 올해부터 적용할 방위비 분담금을 놓고 10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추후 협의 일정도 잡지 못했다. 우리 정부는 '국민 정서'라면서 분담금이 1조원을 넘으면 안 된다는 입장으로 맞섰다. 그러자 미국은 지난달 '최상부 지침'이라며 "한국이 분담금을 12억달러(약 1조3500억원)로 올리고, 협정 기간도 종전 5년에서 1년으로 바꾸자. 어떤 경우에도 10억달러 미만은 안 된다"고 최후 통첩했다고 한다. '최상부 지침'이라는 건 동맹마저 '돈의 논리'로 보는 트럼프가 직접 지시했다는 얘기다. 과거 한국의 분담금을 "껌값 수준"이라고 했던 트럼프가 실제로 한국을 안보 분담(burden sharing)의 시범 케이스로 삼고 있는 정황이 보인다.

무엇보다 2월 말로 예고된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방위비를 놓고 한·미가 갈등한다는 점이 심각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벌일 이번 담판에서 "미국의 안전을 지켜냈다"고 지지자들에게 선전할 결과를 어떻게든 얻어내려 할 것이다. 북이 요구하는 제재 완화는 유엔 결의안 및 국내법 때문에 섣불리 손을 댈 수 없는 만큼, 대신 한·미 연합 체제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김정은에게 대가를 지불할 위험이 있다. 주한 미군을 2만2000명 이하로 감축할 수 없도록 돼있는 미 국방수권법을 안전판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 순환 근무 원칙에 따라 미 2사단 제1여단 소속 4500명이 떠난 뒤 대체 병력이 오지 않으면 2만2000명 하한선을 지키면서도 주한 미군은 지상군 전투 병력은 없는 껍데기로 변한다. 방위비 협상 결렬은 트럼프가 이런 위험한 도박을 벌이는 좋은 핑곗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 트럼프가 주한 미군 감축이라는 뇌관을 만지작거리지 못하게 하려면 2차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방위비 협상을 매듭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