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11시쯤 대전국립현충원에서 고(故) 김남훈 경사의 아버지 김권찬(71)씨가 아들 김 경사의 추도식이 끝난 뒤 묘비 앞에 향을 피우며 눈물을 닦고 있다.

지난 18일 오전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고(故) 김남훈 경사 1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김 경사의 아버지 김권찬(71)씨가 추도식에 참석한 경찰특공대원 20명을 맞았다. 경찰특공대원이던 김 경사(당시 31세)는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의 한 건물을 점거한 철거민 진압 작전에 투입됐다가 농성자들이 낸 불에 숨졌다.

김씨가 향을 피우자 대원들이 거수경례를 했다. 20분간의 추도식이 끝나고 대원들이 떠나자 홀로 남은 김씨가 눈물을 훔쳤다. "대법원 판결까지 다 난 일인데, 정권 바뀌었다고 손바닥 뒤집듯 할 수 있는 겁니까?"

올해 용산 참사 10주기를 맞아 시민단체들과 철거민 유족들은 '용산참사 10주기 범국민 추모위원회'를 꾸려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농성자가 불을 냈다는 증거가 없다" "경찰이 사용한 전기톱과 용접기 등에서 나온 불꽃 때문에 불이 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씨는 "나 같은 유족 가슴에 못을 박는 소리"라며 "그럼 우리 아들이 죄인이란 말이냐"고 했다.

용산 화재 참사는 2009년 1월 20일 발생했다. 재개발에 반대하는 철거민과 이들을 지원하는 철거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용산구의 한 4층 건물에 망루를 짓고 농성을 했다. 철거민들이 도로에 화염병을 던지고 새총을 쏘자 경찰특공대가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망루에 불이 나 김남훈 경사와 철거민 5명이 숨지고 24명이 다쳤다.

2010년 11월 대법원은 "불이 난 원인은 농성자들이 던진 화염병"이라며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9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 중 7명은 징역 4~5년의 실형을 받았다. 하지만 2013년 1월 이명박 정부는 "사회 통합 차원"이라며 복역 중이던 철거민 5명을 특별사면했다.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은 용산 참사로 처벌받은 철거민과 철거용역업체 직원 등 25명을 특별사면해 복권시켰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검찰 과거사위원회, 경찰청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인권조사위)가 사건을 재조사했다. 경찰 인권조사위는 지난해 9월 "경찰 지휘부가 안전 대책이 미비한데도 진압을 강행했다"고 경찰의 과실이 있었다는 취지의 조사 결과를 내놨다.

김씨는 "정권이 바뀌면 사실이 달라지고, 사법부 판결도 필요 없다는 이야기 아니냐"라고 했다. 그러면서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나 같아도 김석기 서울청장이나 경찰 지휘부처럼 판단하고 진압을 지시했을 것"이라고 했다.

10년 전 그날 김씨는 개인택시를 몰았다. 김씨는 "오전 7시쯤 서울대입구역에서 손님을 태우고 용산 현장 앞을 지났다"며 "화염병과 벽돌이 난무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는데 내 아들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용산 참사로 가족을 잃은 철거민 유가족들의 마음도 이해는 된다"고 했다. 김씨는 "인화 물질을 동원한 불법 시위가 없어져 다시는 아들과 같은 불행한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했다.

김남훈 경사의 10주기 추도식이 열린 이틀 뒤,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 열사묘역에서는 사고 당시 숨진 철거민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렸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정치인을 비롯해 150여명이 참석했다. 한 철거민 유가족은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