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태 특파원

15일 새벽 4시(현지 시각) 인도 북부 중소도시 프라야그라지의 상감(sangam·여러 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 지역. 리드미컬한 북소리가 새벽 하늘을 가르자 온몸에 회백색 분칠을 한 알몸의 수행자(나가사두) 100여 명이 강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주황색 옷을 입은 구루(영적 스승)와 수행자 수백명이 그 뒤를 따랐다. 가다 서다 30분쯤 흘렀을까. 나가사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강으로 뛰어들었다. 손으로 수차례 얼굴을 씻더니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이마에 갖다 댔다. 한 나가사두는 잠시 물속으로 모습을 감추더니 자기 키만큼 긴 머리카락을 공중에 흩날리며 소리쳤다. "할 하르 마하데브(전지전능한 시바신은 어디에나 계신다.)" 그러자 나가사두의 목욕을 지켜보던 군중 수천 명이 양손을 하늘에 뻗치며 따라 외쳤다. 1억2000만명이 몰리는 인류 최대의 종교 행사, 쿰브멜라가 본격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죄와 사악함을 씻는 힌두 축제

쿰브멜라는 힌디어로 '주전자 축제'라는 뜻이다. 힌두교 신화에 따르면 마시면 죽지 않는 술인 '암리타'를 얻기 위해 신과 악마가 전쟁을 벌이던 중 암리타 네 방울이 인도 땅으로 흩뿌려졌다. 네 곳 중 하나가 바로 이곳 프라야그라지다. 힌두력(曆)에 따라 3년마다 암리타가 떨어진 네 도시를 돌아가며 쿰브멜라 행사를 연다.

특히 갠지스강·야무나강·사라스와티강(신화 속 상상의 강)이 합류하는 프라야그라지는 가장 신성한 곳으로 꼽힌다. 인도인들은 이 기간에 강물에 몸을 담그면 모든 죄와 사악함을 씻을 수 있으며, 윤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부자와 거지 가리지 않고 인도 전역에서 사람이 모이는 것이다.

일출 때쯤 나가사두 무리가 목욕을 마치자 다음엔 일반인들이 강 속에 몸을 담갔다. 남자들은 속옷만 입은 채, 여자들은 옷을 다 입고 뛰어들었다. 콜카타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아린드남 차크라보르티(47)씨는 "결혼 20주년을 기념해 아내와 함께 왔다"며 "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텔랑가나주에서 온 농부 산디프 쿠마르(37)는 "다음 생에는 농부가 아닌 다른 행복한 삶을 살기를 기원했다"고 말했다.

15일 새벽(현지 시각) 힌두교 종교 행사인‘쿰브멜라’가 열린 인도 북부 프라야그라지의 상감(sangam·여러 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 지역에서 알몸의 수행자(나가사두)들이 강물에 뛰어들어 목욕하고 있다. 쿰브멜라는 성스러운 강물에 몸을 담가 죄를 씻어내는 힌두교 행사로 3년에 한 번씩 열린다. 14일부터 3월 4일까지 49일간 열리는 이번 쿰브멜라에는 1억2000만명이 몰릴 것으로 전망된다.
인류 최대의 종교 행사‘쿰브멜라’가 시작된 15일 (현지 시각) 인도 프라야그라지의 강변이 인도 전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빼곡하다(왼쪽 사진). 이날 하루에만 2000만명이 이곳에 몰려들었다. 쿰브멜라에 참가하기 위해 프라야그라지를 찾은 알몸 수행자가 13일 텐트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다(오른쪽 사진).

목욕에는 귀천이 없다. 브라만(카스트 최상층 계급)부터 달리트(불가촉천민) 모두 강에 몸을 담그고 기도할 수 있다. 15일에는 트랜스젠더 수십명이 목욕을 하기도 했다. 한 트랜스젠더는 "신은 우리를 차별하지 않는다. 우리도 신의 자식이다"라며 환호했다. 다만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나가사두만은 가장 먼저 목욕시킨다. 이들은 깊은 산 동굴 속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고행(苦行)을 하다가 쿰브멜라 때만 속세로 내려온다. 행사에 모여든 사람들이 나가사두에게 축복과 가르침을 받기 위해 달려들기 때문이다.

임시 화장실 12만2000개

쿰브멜라는 14일 시작해 3월 4일까지 49일간 진행된다. 이 기간 송파구만 한 크기의 강가 모래밭 32㎢에 1억2000만명이 몰려든다. 이날 하루에만 2000만명이 몰렸다. 이를 위해 수십만동의 텐트, 11개의 임시 병원, 247㎞의 임시도로, 하나에 3㎞는 족히 넘는 22개의 임시 부교(浮橋), 4만4600개의 LED 가로등, 12만2000개의 임시 화장실 등 기반 시설을 갖췄다. 강에서 목욕을 하고 바로 떠나는 이들뿐 아니라 15만여명은 행사 기간 계속 머무르는 장기 순례객이다. 이들을 위해 쌀 5400t, 밀가루 7800t, 설탕 3200t, 등유 767kL를 준비했다고 BBC가 전했다. 행사 인력도 역대 급이다. 군·경찰 2만명이 이곳에 상주하며 청소부만 1만1000명이다. 온종일 스피커에서는 분실물과 미아를 찾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종교와 AI가 결합한 21세기 축제

2019년의 쿰브멜라는 종교적 믿음과 21세기 IT 기술이 어우러진 힌두 축제였다. 사람들은 꽃잎과 쓰레기가 떠다니는 강물에 몸을 담그고 그 물을 마시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구루와 일반 수행자들은 방수 기능이 탑재된 최신 스마트폰으로 자신이 목욕하는 모습을 '셀카'로 담았다. 단체 식당에서는 수행자들이 인도의 간편 결제 앱(애플리케이션) '페이티엠'으로 음식 값을 치렀다. 압권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인원 통제였다. 쿰브멜라 지역을 9개로 나누고 수시로 지역을 나눠 통제했다.

주최 측 관계자는 "1000대의 감시 카메라를 활용한 AI 기술로 사람이 몰리는 것을 예측해 유동적으로 지역을 통제하고 사람들을 한산한 곳으로 유도한다"고 말했다.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궁금한 점을 묻고 분실물도 찾을 수 있다.

총선 앞두고 힌두교 세력 결집 의도

인도 정부와 우타르프라데시주(州) 정부는 이번 쿰브멜라를 위해 424억루피(약 6677억원)를 쏟아부었다. 2013년 열린 마하 쿰브멜라(144년에 한 번 오는 대쿰브멜라) 예산 130억루피를 훌쩍 넘긴 액수다. 일각에서는 힌두민족주의 세력인 집권당 인도인민당(BJP)이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10억명에 달하는 힌두교 신자들을 결집하려는 의도가 반영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사장 곳곳에는 같은 당 소속인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요기 아디티야나트 주총리 사진이 있는 정책 홍보 간판이 20m 간격으로 들어서 있었다. 힌두교 사제이기도 한 요기 주총리는 지난해 도시 이름을 이슬람식인 알라하바드에서 힌두식인 프라야그라지로 바꿨다.

지역 민방위대원인 슈드한슈(27)씨는 "요기 총리 덕분에 우리 도시가 진짜 이름을 되찾고 번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