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따른 낚싯배 안전사고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고가 벌어진 낚싯배 9.77t(톤) 규모라는 것이다. 지난 11일 경남 통영시 욕지도 앞바다에서 화물선과 충돌한 뒤 뒤집힌 낚싯배 ‘무적호’도 9.77t(정원 22명)이었다.

지난 11일 경남 통영시 욕지도 남쪽 약 80㎞ 해상에서 9.77t급 낚시어선 무적호가 3000t급 화물선과 충돌 후 뒤집혀 통영해경이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14일 포항에서 조업하던 어선 9.77t급 ‘장성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과거 인명피해가 컸던 ‘낚싯배 잔혹사’에서도 9.77t 규모의 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2015년 9월 5일 제주 북부 해상에서 전복된 돌고래호도 9.77t. 악천후에 로프가 추진기에 감긴 것이 원인이었다. 2017년 말 인천 영흥도 인근서 급유선과 충돌해 15명이 숨진 낚싯배 ‘선창 1호’도 9.77t이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러나 해양 안전전문가들은 "낚싯배를 10t 미만으로 묶은 제한한 규정이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규모가 작은 9.77t 낚싯배는 충돌사고에 취약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해양설비기업 포어시스 원종화 대표 얘기다.

"9.77t급 낚싯배는 경차나 다름 없습니다. 이런 배가 대형 화물선과 충돌하면 복원력(중심을 잡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작은 충격에도 전복될 가능성이 커지는 겁니다. 경차가 대형 트럭과 부딪치는 것과 비슷합니다."

9.77t 낚싯배가 탄생하게 된 것은 1995년 제정된 낚시어선법(낚시 관리 및 육성법)의 영향이 크다. 당초 이 법은 어한기(漁閑期) 수입이 중단되는 영세어민들을 배려할 목적으로 마련됐다. 부업(副業)으로 어선을 낚싯배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10t 미만 소형어선을 낚싯배로 병행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10t 미만의 작은 배는 지자체에 신고만 하면 손쉽게 '신고확인증'을 발급 받을 수 있다. 또 9.77t 낚싯배 선장은 소형선박조종사 면허만 있으면 된다. 진입문턱이 낮은 것이다.
반면 10t이 넘어가는 배는 해양수산부 허가를 얻어야만 하기 때문에 '낚싯배 등록절차'가 상대적으로 깐깐하다. 운용이 간편한 9.77t급이 '낚싯배 표준규격'이 된 배경이다. 실제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전국 낚시배 85%가 9.77t급이다.

9.77t 낚싯배의 최대 정원은 22명인데 반해 선원은 1명만 타도 된다는 규정도 문제로 꼽힌다. 운항, 식사준비, 낚시조언을 한 사람이 감당하면서 상대적으로 안전에 소홀하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낚시선수 서병철(50)씨는"비슷한 크기의 여객선은 최대 정원은 14명인데, 낚싯배는 22명으로 더 많이 허용하면서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됐다"며 "선장 1명이 운항 하면서, 21명의 승객들의 점심까지 챙기느라 조타실을 비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전복사고가 난 9.77t급 낚싯배 선창1호(위)와 돌고래호(아래)의 모습.

최근 바다낚시를 소재로 한 예능프로그램 '도시어부'가 흥행하면서 '낚시 열풍'이 일기 시작했다. 덩달아 낚싯배가 주업(主業), 조업활동은 부업으로 삼는 어민들도 늘어났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2014년 87건이었던 낚싯배 사고 건수는 2017년 263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인명 피해도 43명에서 105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송민수 여수해양경찰서 경사는 "사고에 취약한 9.77t급 낚싯배 선장, 선주들에 대한 안전교육을 강화하겠다"면서 "과속, 음주, 정원초과, 구명조끼 미착용, 불법증개축 등 5대 안전사고에 대해서는 엄벌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