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기 사회정책부 기자

병원도 안 다니고 특별히 아픈 데도 없어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 심장이 멎는 게 돌연사(突然死)다. 2017년 한 해에만 1만8261명이 이렇게 숨졌다. 감염병, 기생충성 질환 사망자(7986명)의 두 배 이상이고, 교통사고 사망자(5028명)의 세 배가 넘는다. 폐암 사망자(1만7980명)도 제쳤다.

돌연사 증가 속도도 빠르다. 질병관리본부 통계를 보면 심장 문제로 돌연사한 사람은 2008년 1만2271명에서 2015년 1만8658명으로 6000명 넘게 늘었다. 이후에도 사망자는 줄지 않고 비슷한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국민은 암(癌) 걸릴까 봐 떨고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창궐을 두려워하지만, 실은 돌연사가 국민 목숨을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살인자'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 분야 전문가인 오동진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교수는 "사실 돌연사 가운데 유전적 요인 등을 제외한 75~80%는 예방적 조치만 잘하면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생활 습관을 개선하거나 정기(定期) 관리를 잘한다면 황망하게 세상을 뜰 사람이 급감한다는 얘기다. 반대로 만성 질환자가 자신의 혈당·혈압 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심각한 심장 질환으로 이어져 돌연사 위험도 높아진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른 많은 전문가는 "흡연, 음주, 기름진 음식, 운동 부족, 스트레스 등이 돌연사를 부른다"며 "암보다 무서운 게 돌연사인데 정작 정부가 너무 무관심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각종 감염병이나 사고, 중증 질환 예방·치료에는 관심을 쏟으면서도 국민 생활 습관 개선과 만성 질환 관리를 통한 돌연사 예방에 매우 소극적이라는 지적이다. 병에 걸린 사람에게 치료비 혜택을 주는 데 집중할 뿐, 미리 막는 일을 위해 예산과 인력 아무것도 투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의 금연(禁煙) 정책만 봐도 아이코스 같은 궐련형 전자 담배의 공세에 밀려 무력(無力)해지고 있다. 작년 7월 복지부가 내놓은 비만 관리 종합 대책은, 국민 소통 또는 설득 노력 없이 "폭식을 유발하는 '먹방'에 대한 지침을 만들겠다"고 했다가 불필요한 논란과 짜증만 낳았다. 당뇨·고혈압 등 만성 질환 환자들에게 효과 높은 건강관리 방법이 '원격의료'인데, 이를 허용하는 법안은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 한 채 수년째 국회에 묶여 있다.

학생 때부터 즐기며 운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교육·체육 정책도 거의 전무(全無)하다. 정부가 무지(無知)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동안, 연간 돌연사 2만명 시대가 눈앞에 온 것이다. 국민 질병 수준이 된 돌연사 문제에 정부가 이제라도 심각성을 깨닫고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길 바란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