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져 있다는 점에서 길[路]은 시간의 동의어라 할 수 있다. 올해 한국 나이로 일흔이 된 프랑스 사진 예술의 거장 베르나르 포콩이 70년 과거를 반추하는 자전적 영상 전시 '나의 길'을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연다. 길을 돌아보는 행위는 한 길 사람 속을 들여다보는 일이고, 삶의 교통에서 추돌한 숱한 고통을 불러낸다. "'나의 길'은 내 영혼 내부의 다큐멘터리다." 파리에 머물고 있는 그와 이메일로 만났다.

이번 전시는 20분 길이의 최근 영상 작품 3점과 그 스틸컷 30여점 등을 선보인다. 승용차 앞에 카메라를 달고 녹화한 프랑스와 노르웨이·태국·페루 등 수십 개국의 길 위에 소르본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던 포콩의 부유하는 단상이 내레이션으로 내려앉는다. 쿠바 해변의 유정탑(油井塔), 라오스 오솔길의 오두막 같은 침묵의 풍경과 더불어 목소리가 절제된 몽환을 제시한다. 펼쳐진 여러 길 중에 2013년 방문했던 한국의 부산도 있다. 그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광안대교는 정말 환상적이었다"며 "이 작품은 영상이 아니라 영상을 이용한 조금 특별한 시(詩)"라고 했다. 전시에 맞춰 내레이션을 활자화한 동명의 책도 출간됐다. 포콩은 독자와의 만남 등을 위해 4월쯤 방한할 예정이다.

베르나르 포콩의 영상 '나의 길' 연작의 한 장면. 프랑스의 한적한 도로 풍경 아래에 포콩의 승용차 보닛이 보인다. 마네킹 등을 이용한 연출 사진 '미장센 포토'를 선도하며 이름을 떨쳤으나, 현재는 영상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왼쪽부터 그의 미장센 포토 대표작 '페퍼민트 주스'(1980), 미장센 포토 작업 시절의 젊은 포콩, '이미지의 종말' 시리즈 마지막 사진(1995).

1970년대 마네킹을 이용한 연출 사진, 이른바 '미장센 포토'의 선구자로 세계적 명성을 떨쳤으나, 1995년 돌연 '이미지의 종말'을 선언하며 사진 촬영을 중단했다. 사람 살갗에 흰 글씨로 'fin'(끝)이라 쓴 뒤 찍은 사진이 대표적이다. 누구나 사진을 찍는 시대, 이미지 범람의 미래를 예견했던 그는 "사진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충분히 표현했기에 내 사진 작업은 모두 완료됐다"며 "영감이 흐려지면서 같은 작업을 지속·반복해 닳아 없어지는 일을 겪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영상 작업에 몰두했고, 2011년부터 '나의 길' 연작을 시작했다. 거장이 인생의 '두 번째 시기'에 내놓은 작품이기에 늙음에 대한 독백으로도 읽힌다. '늙는 것은 인간이 사회문제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며, 그 모든 것이 어리석었고, 일시적인 것이었으며, 부질없었고, 한때의 상황이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본인의 생물학적 나이에 대해선 질겁했다. "너무 외설적이다! 나는 내 나이의 숫자를 결코 발음하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 나는 '우리 나이의 숫자는 우리와 전혀 관계없는 아주 낯선 소리로만 들린다'고 쓴 적이 있다." 중국 청두에는 현재 포콩의 상설 전시관을 둔 미술관이 4월 개관을 목표로 건립 중이다. 그는 "내 나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치르고 싶어 하는 중국 친구들과 날마다 실랑이한다"면서도 "프랑스에는 노인에 대한 어떠한 존경심도 없고 노인의 지혜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영상 3부에 이르러 그의 길은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라 자평한 볼리비아 유우니 소금호수로 이어진다. 소금밭 위에 물이 차오르고, 점차 노을과 어둠으로 이동하는 시간의 추이가 유연한 변화와 생동의 주제를 보여준다. '내가 추구하는 대상, 세상은 매초마다 그것을 생성하고 삼켜버린다'는 내레이션은 '그러나 아무리 늙었다고 해도 변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늙지는 않았다'로 나아간다. 그는 "향후 미얀마 바간, 이집트 카이로, 파타고니아의 피츠로이 등을 추가로 작업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니 길을 돌아보는 것은 여전히 '세상과 함께 달리고 싶은 욕구'와 다르지 않다. 2월 24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