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 시각) 로마 시내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 앞에 남녀노소 10여 명이 똑같은 남색 운동복을 함께 갖춰 입고 나타났다. 운동복 왼쪽 가슴에는 바티칸을 상징하는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성당 앞 광장을 나란히 달린 이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었다.

이 '선수'들은 미니 국가인 로마 교황청이 창설한 육상팀 팀원이다. 교황청의 사상 첫 공식 스포츠팀이다. 이 육상팀에는 사제와 수녀 등 성직자뿐 아니라 교황청 구내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교황을 경호하는 근위병, 교황청 도서관에서 일하는 직원까지 포함됐다. 나이대는 19세부터 62세까지 다양하다.

교황청은 이날 육상팀 발족을 공식 발표하며, 국제육상연맹(IAAF)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교황청이 만든 첫 공식 '국가대표팀'이다. 육상팀 단장을 맡은 멜초르 호세 산체스 데 토카 교황청 문화평의회 차관보는 "우리의 꿈은 올림픽 개막식에서 교황청 국기가 휘날리는 것을 보는 것이지만, 일단은 의미 있는 대회에 출전하는 것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교황청 육상팀 선수들은 아르헨티나의 군부 독재 치하에서 실종된 아르헨티나 장거리 육상선수인 미겔 산체스를 기리기 위해 오는 20일 로마에서 열리는 10㎞ 단축 마라톤 대회에서 공식 데뷔한다.

교황청은 평화와 연대의 수단으로 스포츠를 장려해 온 기조를 반영해 스포츠팀을 창설했다고 설명한다.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지오반니 말라고 이탈리아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언젠가는 교황청 선수들이 이탈리아로부터 (올림픽) 메달을 빼앗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된다"고 농담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