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신산업·신기술 분야에서 규제 문의를 했는데 한 달 내에 정부가 회신하지 않으면 규제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출시할 수 있다. 모호할 경우 임시 허가도 내준다. 문재인 정부가 처음으로 실효성 있는 규제 혁신 조치를 행동으로 내놨다. 규제 샌드박스 적용 1호로는 외곽 지역 아니면 불가능했던 수소전기차 충전소를 도심에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파리는 되는데 서울은 안 되던 사업이다. 현대차가 세계 수준의 수소전기차를 만들어 수출하고 있지만 수소충전소는 서울에 2곳, 전국엔 9곳뿐이었다. 병원을 안 거치고 민간 업체에 의뢰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지금 미국 IT전시회 'CES'에서는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혁신의 경연이 벌어지고 있다. 그 상당수는 한국에선 규제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한 국내 스타트업은 뇌졸중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자기 집 거실에 앉아 재활 운동을 하고 의사의 원격 처방을 받을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해 CES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국내에선 가정용 판매가 불가능하다. 얼마 전엔 자율주행차의 국내 최고 전문가와 제자들이 설립한 스타트업이 사업 거점을 미국 실리콘밸리로 옮긴 일도 있었다.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중 57곳이 한국이라면 아예 창업이 불가능했거나 조건부 영업만 가능했다고 한다. 이러고서 경제의 미래를 얘기할 수 없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다. 현장 공무원들이 규제 '권력'을 내려놓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신산업과 전통 산업의 갈등 조정도 넘어야 할 산이다. '카풀'과 택시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최근 '버스 카풀' 빗장을 풀었다고 했지만 도심 영업은 제외시키는 바람에 반쪽짜리가 됐다. 대한상의가 지난 5년간 규제 개혁 리스트를 정부에 제출한 것이 39차례나 되지만 해결된 것이 거의 없는 것도 정부가 기득권과의 갈등 조정을 지레 포기한 탓이 크다. 정치권 문제도 심각하다. 20대 국회 2년여 동안 발의된 기업 관련 법안 중 규제 법안이 58%에 달한다.

신산업을 반대하는 기존 산업 측이 집단 반발할 때 정권이 선거와 표를 의식하면 '샌드박스'는 소용이 없다. 그 포퓰리즘에서 벗어나면 샌드박스 규제 개혁은 이 정부 최대 업적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