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 대표

조선 시대 5대 궁의 하나인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 그 문을 나선 임금이 거둥길(御路·왕이 다니는 길)로 삼았던 '역사의 길' 돈화문로(敦化門路). 1㎞ 남짓인 돈화문로는 요즘 해가 지면 순식간에 적막한 거리로 변한다. 밤낮 관광객이 북적이는 인사동길과 불과 300m 거리이고, 항상 붐비는 탑골공원~안국역 간 삼일대로가 지척인데 말이다. 돈화문로 중간에 지하철 3호선과 5호선 환승역인 종로3가역이 있는데도 이러니 알 수 없는 일이다.

불과 몇 달 전 돈화문로에서 가까운 익선동 한옥마을이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한국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렸다. 소위 '뜨는 곳'이다. 개화 시대 모던 보이와 신여성들의 잔영을 좇는 젊음의 거리로 탈바꿈한 덕이다. 그럼에도 돈화문 거리는 어둡고 인적 없는 거리로 머물러 있다. 돈의동·익선동·운니동의 진입로이자 종로 3가에서 창덕궁을 향해 직선으로 뻗은 길답지 않다.

서울시는 지난해 2월 창덕궁 일대 돈화문로에 대한 '창덕궁 앞 도성 한복판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을 내놓았다. 이른바 '역사의 길'을 재구성하는 방안이자, 시대 흐름에 따른 특화거리 조성 계획이다. 종로구청도 창덕궁과 종묘를 연결하는 돈화문로에 자발적인 지역문화 콘텐츠를 육성해 '제2의 인사동'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도시가 가진 삶의 기억을 복원하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 일대 주민과 상인들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속도감이 없기 때문이다. 여러 계획들이 수년간 계획으로만 머물러왔기 때문이다.

돈화문로를 더 이상 '적막강산'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전통문화인들의 생각이다. 내가 일하는 한국전통음식연구소는 돈화문로 한가운데에 있다. 20년이나 지났지만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얼마 전부터 해가 지면 건물 앞길을 훤히 밝히고 있다. 거리 분위기가 달라진 덕인지 행인과 상인들 표정이 한결 밝아 보인다.

돈화문로 인근에 있는 여러 박물관과 문화 자산들도 이 거리의 변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왕이 거닐던 거리'라는 스토리와 '왕과 백성이 만나는 소통의 장소'라는 가치만으로도 돈화문로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하루빨리 도시재생 사업이 착수되고 결실을 거둬 우리의 역사문화와 삶의 기억을 복원하게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