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0월 23일 여주 남한강에서 나룻배 전복 사고가 일어나 소풍 다녀오던 초등생 등 49명이 숨졌다. 안타까운 참사 현장에서 한 어린이의 일기장이 강물 위로 떠올랐다. 생존자 것인지 사망자 것인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사고 전날 쓴 내용이 눈길을 붙들어 신문에 보도됐다. "내일 소풍을 간다. 참 재미있을 거야. … 정초에 내 토정비결을 본 아버지가 물가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강을 건너게 돼서 좀 불안한 생각이 든다."(경향신문 1963년 10월 24일 자) 그렇게 한 시절 '토정비결'은 우리 삶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76년 1월 초 서울 어느 거리에서 토정비결 보는 할아버지가 여대생 고객에게 한해 신수(身數)가 담긴 괘를 읽어주고 있다(동아일보 1976년 1월 9일자).

새해가 밝으면 큰길가엔 할아버지들이 토정비결 봐주는 좌판이 즐비하게 등장했다. 이런 풍경은 1990년대 초까지도 볼 수 있었다. 요즘 말로 노인들의 '반짝 알바'였다. 1954년 초에 어떤 사람이 토정비결 노점으로 30만환(약 2300만원)을 벌었다는 소문이 돌자, 이듬해부터 이 일에 뛰어든 사람이 급증했다. 근대화를 외치던 1960~1970년대엔 토정비결은 추방해야 할 미신이란 비판도 꾸준히 받았다. 하지만 1969년 정부의 표본 조사 결과 국민의 93.5%가 "토정비결이나 작명, 사주, 궁합, 관상 등을 보러 다닌다"고 답했다.

"국제도시 서울 한복판에서 토정비결이 웬말인가"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서울이 가장 국제적으로 도약했던 1988년 올림픽의 해에 오히려 토정비결 이벤트가 요란했다. 그해 신정 연휴엔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내·외국인 391명에게 영어로 토정비결을 봐줬다.

서울 올림픽 개막 석 달 전인 1988년 6월엔 AFP통신이 세계 스포츠 스타 6명의 토정비결 내용을 서울발로 세계에 타전했다. 육상 100m에서 금메달이 유력시되던 칼 루이스의 9월 운세는 의외로 나빠 "힘들게 노력하나 마음만 이리저리 떠다닌다"였다. 반면 라이벌 벤 존슨의 괘는 "9월 중 큰 행운이 찾아와 돌본다"여서 금메달 예언으로 해석됐다(경향신문 1988년 6월 27일 자). '세기의 대결'을 벌여보니 정말로 칼 루이스는 2위로 밀리고 벤 존슨이 9.79초의 세계신기록을 올리며 우승, 올림픽 영웅이 됐다. 그러나 토정비결의 신통력은 꼭 거기까지였다. 벤 존슨은 환호한 지 사흘 뒤 금지 약물 복용 사실이 조선일보 특종으로 폭로돼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1995년 11월 1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됐을 땐 노 전 대통령의 그해 토정비결이 어땠는지를 보도한 신문도 있었다. "강가에 왔는데도 배가 없으니 이를 어찌할꼬" 하는 내용이었다.

이제 토정비결을 거리에선 보기 어렵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2019년 새해 이벤트로 금융기관 등의 토정비결 온라인 서비스가 한창이다. 토정비결의 7056가지 괘를 컴퓨터로 분석해 보니 아주 좋은 운(運)이나 나쁘지 않은 운이 72%이고 몹시 나쁜 운은 28%라고 한다. 저자 이지함이 난세를 힘겹게 살아가던 민초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길운(吉運)을 많게 했다는 해석이 있다. 오늘날에도 토정비결이 살아있는 건 세상살이가 불안한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증표일까. 그러고 보니 어느 전자 결제 업체의 올해 토정비결 서비스의 초점은 재물 운도 성공 운도 아니고 '2019년을 무사히 보낼 비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