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근 경제부 차장

작년 여름, 신재민 기획재정부 전 사무관은 사표를 내고 수습 시절 함께 일했던 A 과장을 찾아갔다. 유달리 신 전 사무관이 따르던 사람이었다. 외부 파견 근무 중이던 그 과장은 밥을 사주며 이후 계획을 물었다. 신 전 사무관은 "학원 강사 해서 돈 많이 벌고, 그 돈으로 사회에 좋은 일을 하겠다"고 했다. 앞날 창창한 후배가 떠난다니 아쉬웠지만, A 과장은 "대견하다"며 등을 두드려줬다. "(신 전 사무관은) 일도 잘하고 사람도 따뜻했다"던 그의 목소리는 통화 내내 가라앉아 있었다. 공무원이 사표를 내면 정부는 그냥 받지 않는다. 그 공무원이 업무상 비리나 문제가 없었는지 2~3주를 검증한다. 퇴직금을 주기 전에 징계할 행동이 없는지 가리는 절차다. 신 전 사무관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의 잠적과 자살 시도 소식이 전해진 지난 3일, 역시 그와 수개월 같이 일했던 B 과장은 "온종일 걱정이 돼서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했다. "본인 일이 많아 야근을 밥 먹듯 하다가도 동료가 소주 한잔 하자고 하면 꼭 따라가 얘기를 들어주던 친구다. 남의 이목을 끌거나, 돈이 아쉬워서 (폭로할 만한) 그럴 사람이 아니다." B 과장은 "주변 선배와 동료들도 내 생각과 같다"고 했다.

두 사람 외에도 열 명이 넘는 기재부 간부와 직원에게 물었다. 신 전 사무관을 나쁘게 얘기하는 이가 없었다. 그중 박한 평가가 "다른 국(局)에서 더 경력을 쌓았더라면 이렇게 안 했을 것"이라는 정도였다. 좁디좁은 한국 사회에서 여럿의 공통된 평판이 실제와 다른 일은 겪어보지 못했다. 더구나 조직에 불리한 폭로를 한 사람에 대한 평가다. 신 전 사무관에게 다른 의도가 있었다면, 그 얘기는 기재부에서 가장 먼저 흘러나왔을 것이다. 계산에 밝은 관료들은 사람 평가에도 에누리나 덤이 없다.

정부 말을 빌리면 "경력 3년도 안 된" 풋내기의 폭로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차영환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이 직접 해명했다. 구윤철 기재부 차관은 그가 입원한 병원을 찾았다가 문전박대당했다. 직접 관련이 없는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그의 폭로에 "그 나름의 진정성이 있다"고 했다. 관가 안팎에선 폭로 자체가 너무 구체적이라 다들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KT&G 사장 연임과 적자 국채 발행 문제를 여러 곳에 묻고 깊이 생각했다. 부적절한 일이 있었고, 잘못된 일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쉽고 간단하게 적폐(積弊)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뒤늦게 전·현직 고위직들이 나선 건 진정성을 증명하려고 자살도 불사한 신 전 사무관의 행동 때문이다. 아는 것이 부족하고,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진정 나라를 걱정하고 사회가 나아지길 바라는 사람에게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

손혜원 민주당 의원과 일부 좌파 인사의 몹쓸 언행(言行)을 여기 옮길 생각은 없다. 폭로 이후 그를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들 말로는, 성품이 여린 신 전 사무관은 유독 악의적인 글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가 자살을 암시했던 글에는 이런 공격 탓에 극단적 선택을 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보인다. 그에게는 정말로 '말'이 '칼'이었다.

기재부 동료들 기억 속에 신 전 사무관이 좋은 사람, 유능한 후배였다는 '사실'을 꼭 전하고 싶다. 그의 부모는 그를 자랑스럽게 여길 자격이 있다. 신 전 사무관의 쾌유(快癒)와 재기(再起)를 기원한다. "사람이 먼저"라던 청와대도 진심 어린 한 청년의 고발에 사람 대하는 자세가 무엇일지 다시 생각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