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참모총장을 카페로 불러내 만난 청와대 인사수석실 정모 전 행정관은 2017년 갓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청와대 5급 행정관으로 발탁된 인물이다. 그가 어떻게 육군 참모총장을 외부로 불러내 인사 관련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지 정치권에선 "미스터리"라는 반응이다.

청와대 인사수석실 행정관이 2017년 9월 장성 진급 인사를 앞두고 현직 육군참모총장을 접촉한 것과 관련, 국회 국방위 소속 자유한국당 이종명·백승주·이주영(왼쪽부터) 의원이 기자회견을 갖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출신 김태우 수사관(6급)은 작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출입하면서 유영민 장관을 장관 집무실에서 직접 면담했다. 정부 관계자는 "청와대 직원이 마음만 먹으면 장관을 독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행정관의 힘이 얼마나 세길래 일선 부처의 장관급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청와대에 쏠린 힘이 워낙 강하다 보니 부처 장관들이 행정관의 요구도 쉽게 뿌리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변호사 합격 두 달 만에 행정관 발탁

부산의 한 로스쿨을 나온 정 전 행정관은 지난 2017년 6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지 두 달 만에 청와대로 들어왔다. 당시 34세였고 변호사로서 실전 경력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요직으로 꼽히는 인사수석실 산하 균형인사비서관실에 배치됐다. 군뿐만 아니라 검경 관련 인사를 담당하는 곳이다. 이례적인 일이다. 그리고 몇 달 뒤 '신입 사원급'인 정 전 행정관은 인사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듣겠다며 육군 최고 책임자인 김용우 참모총장을 만났다. 청와대 안보실 심모 행정관(육군 대령)이 다리를 놨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어떤 사람을 승진·탈락시키는 게 아니고 장성 진급 인사에서 육사 편중을 어떻게 고칠지 등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야당들은 "정 행정관이 어떤 사유로 참모총장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국민에게 제대로 밝혀야 한다"고 했다.

정 전 행정관의 임명 배경은 베일에 싸여 있다. 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인사수석실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했다. 정부 관계자는 "인사수석실엔 대선 캠프에서 검증된 인사나 부처에서 '에이스'로 불리는 사람들이 주로 들어왔다"며 "변호사 시험을 이제 막 통과한 사람이 들어왔다는 건 여권 인사의 강력한 추천이 아니면 들어오기 어려웠다"고 했다. 정 전 행정관은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 산하 법률지원단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선 "정 전 행정관이 부산의 로스쿨 나온 점을 미뤄볼 때 부산 친문 인맥의 줄을 타고 들어온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정 전 행정관은 당시 사건으로 면직된 뒤 서울 서초동에 법률 사무소를 개업했다. 사무소 관계자는 "정 전 행정관은 휴가를 쓴 상태"라고 했다.

◇급이 전혀 맞지 않는 만남 왜?

군 관계자들은 김 총장과 정 전 행정관의 만남을 의아하게 여기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청와대 행정관이 육군 인사 참모나 과장급 인사를 만났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의전상 장관급인 육군 총장이 행정관 요청을 받고 만났다는 것은 전혀 급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군이 청와대의 위세에 눌렸던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군 관계자는 "청와대 행정관이 직책은 낮지만, 일선 부처에서 보면 똑같은 '청와대 사람'"이라며 "요즘 청와대의 파워가 대단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고 했다. 참모총장이 행정관이라도 꼭 만나야 할 만큼 육군의 상황이 절박했던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육군 관계자는 "정권 출범 초기 육군은 이 정부에서 '적폐' 취급을 받았다"며 "해군 출신 장관과 공군 출신 합참의장, 민간인 출신 실·국장 사이에서 육군 총장은 상당히 입지가 좁았을 것"이라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만남에 응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육군은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청와대 행정관이 군 인사와 관련한 시스템적 조언을 받으려고 한다고 했고, 마침 주말에 시간이 나 국방부 인근 카페에서 잠시 만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군 안팎에선 "정모 전 행정관이 가져온 가방 안 문건에 청와대가 작성한 좌천·승진 명단이 작성돼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 전 행정관과 김 총장의 만남을 주선한 육군 대령 출신 심모 전 행정관(현재 준장)을 두고도 뒷말이 적잖다. 송영무 전 장관 인사 검증 대응팀 멤버였던 심 전 행정관이 장관과의 친분을 이용해 둘의 만남을 주선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입지를 높이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심 전 행정관은 그해 준장 승진 대상이었기 때문에 만남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육군은 2017년 7월, 후반기 장군 진급 가능 대상자 명단을 국방부에 넘겼고 이들이 만났던 9월은 장성급 인사 절차가 한창 진행되던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