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최민수 키운 '스타메이커' 디자이너 하용수 별세…향년 69세
코카콜라 모델로 시작해 패션 디렉터, 패션 사업가 등으로 활약

패션계와 연예계를 넘나들며 스타들을 발굴해온 하용수 씨가 5일 별세했다.

패션 디자이너이자 영화배우로, '스타메이커'로 불렸던 하용수(본명 박순식) 씨가 5일 별세했다. 향년 69세.

하용수의 가족에 따르면, 하용수는 5일 오전 4시께 입원 중이던 경기 양주의 한 요양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간암 말기 투병 중이던 지난해 12월 하순 서울대병원에서 이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다.

하용수는 모델로 데뷔했다. 고등학교 때 코카콜라 모델을 시작으로, 한양대 행정학과 재학 시절엔 박카스 모델로 활약했다. 대학 졸업 후 1969년 동양방송(TBC) 공채 탤런트 7기에 합격해 본격적으로 배우 인생을 시작했다. 신성일(1937~20918) 주연 '혈류'를 시작으로 '깊은 사이' '별들의 고향'(1974), '남사당'(1975), '깊은 밤의 포옹'(1981) '게임의 법칙'(1994)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하 씨는 1974년 진태옥 디자이너 패션쇼 연출을 맡은 것을 계기로 패션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평범한 패션쇼가 아닌 뮤지컬 같은 연출을 선보여 패션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패션쇼는 패션계의 한 획을 그을 만큼 획기적인 사건이 됐고, 그는 국내 최초의 ‘패션 디렉터’라는 명성을 얻었다. 영화 의상도 제작해 1992년 ‘사의 찬미’로 제30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의상상을 받았다.

패션 사업가로도 명성을 떨쳤다. ‘캐주얼’이라는 말이 생소했던 1970년대 ‘유니섹스(Unisex·남녀 구별이 없는 것)’ 콘셉트를 내세워 남대문 '페인트타운', '커먼플라자', 명동의 '비상구'를 만들었다. 1990년대에는 ‘닉스’, ‘GV2’, ‘클럽모나코’ 등을 감독해 성공시켰다. 손을 대기만 해도 성공할 만큼 뛰어난 사업 능력을 선보였지만, 1997년 절친한 지인의 공금 횡령으로 부도를 맞게 됐다. 이후 미국으로 도피해야 했다.

2011년 미스유니버시티 대회 오프닝 갈라 패션쇼에서 피날레에 선 하용수.

하 씨는 연예인 매니지먼트 업계에서도 이름을 날렸다. 한 가게의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한 이정재를 보고 한 눈에 스타가 될 것을 확신하고 그를 트레이닝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진 사실. 이 밖에도 최민수, 손창민, 오연수, 이미숙, 황신혜, 예지원 등을 발굴해 ‘스타제조기’로 불렸다.

그는 단지 스타를 발굴하거나 옷을 만든 사람이 아니었다. 캐스팅 디렉터이자 이미지 컨설턴트였다. 그는 배우를 캐스팅할 때 먼저 인성(人性)을 평가했다. 배우라면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 가지 애티튜드(태도)가 남들에게 표본이 되어야 한다는 게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디자인할 때도 단지 옷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났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그 시대의 문화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옷 꼬매는 법이나 그리기만 배울 게 아니라 역사를 알아야 하고 소양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감각이란 그 시대의 문화와 그 시대의 영화들을 탐독하면 저절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씨는 지난해 1월 영화 '천화'의 주연으로 나서 치매 노인 문호 역을 맡아 열연했지만, 병세가 악화하면서 결국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절친인 배우 한지일은 하 씨의 별세 소식에 자신의 SNS에 "나쁜 놈 왜 먼저 가니"라며 비통한 심정을 드러냈다.

유족으로는 아들 태양(39) 씨가 있다. 장례는 필리핀에 거주하는 유가족이 도착하는 6일 순천향대 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