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7일 국립극장 송년 판소리 무대에서 ‘심청가’를 부르는 안숙선 명창. ‘효(孝)’라는 거창한 주제 의식이 낡게 느껴졌다면 인간적 고뇌와 희비(喜悲)의 쌍곡선에 집중해보자. 심 봉사가 드디어 눈을 뜨는 장면에선 가슴 뻐근한 감동과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연말 의식은 송년 판소리를 보러 가는 것이다. 이렇게 쓰긴 했지만 떳떳하지 못하다. 판소리는 평생 세 번 본 게 다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판소리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두 번째 판소리는 '적벽가'였다. 2015년이었다. 나는 그걸 듣다가 '전율'이라는 걸 느꼈다. 적벽대전에서 참패한 조조가 죽은 부하들을 점고하며 하나씩 부르는 대목이 하도 슬퍼서 '창자가 끊어진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라고 난생처음 느꼈다. 말로만 들었던 '단장(斷腸)'이 내게도 육박해 들어오는 경험이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적벽가'를 보고 나는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래, 연말에는 송년 판소리를 보러 가자.'

결심했다고는 하지만 넋 놓고 있다 공연 한 달 전인가에 예매했다. 다행히 얼마 남지 않은 괜찮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래 놓고도 내키지 않았다. 왜냐? 올해의 프로그램이 '심청가'였기 때문에. 나는 판소리는 좋지만 〈심청가〉는… 싫었다. 그 작품의 아주 거창한 주제 의식이 싫었다. 그러니까 '효'말이다. 세상의 효자 효녀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처럼 찔리는 게 있는 사람은 도무지 그런 걸 보고 싶지가 않다. 행하지 못했던, 못하고 있는, 앞으로도 못할 '효'. 어릴 때부터 동화에서 많이도 보았던 '효'. 들을 때마다 얹힐 것 같았던 단어 '효'. 또 언젠가 들었던 '효도하세요'라는 말은 하도 낯 뜨거워서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떠올리게도 했었다. 이런 내가 장님 아버지 눈을 뜨게 하겠다고 효녀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걸 봐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국립극장은 공사 중이었다. 그래서 주차를 국립극장 건너편에 있는 자유총연맹에 했다. 내가 주차를 한 자리에는 열 개쯤 되는 깃발들이 거의 찢어들 듯 펄럭이고 있었다. 바람이 유난히 드센 날이었다. 공사 때문인지 대기실이랄 게 없었다. 검은 롱패딩을 입은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거나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으로 몸을 녹였다. 좁은 편의점은 사람들로 꽉 찬 데다 컵라면의 열기로 뿌옜다. 호빵으로 가득한 찜기 같은 느낌이었달까?

저녁 일곱 시에 공연 시작. 안숙선 명창과 네 제자가 나눠 부른다고 했다. 나눠 부르는 걸 '분창'이라고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분창에 서정금·박성희·허정승·박자희. 각각 개성이 다른 소리꾼들이 '심청가'를 이어 갔다. 나는 판소리 사설집을 보다 무대를 보다 다시 사설집을 보다 하는 식으로 정신 사납게 공연을 봤다. 그런 나와는 달리 많은 관중이 '아야' '얼쑤' '어허' 하는 추임새를 넣으며 판소리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이런 분들을 '귀명창'이라고 한다. 판소리를 할 줄을 몰라도 듣는 일이 판소리 명창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의미인 귀명창.

귀명창이라. 난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이렇게 귀여운 단어도 있나 싶었다. 음악을 잘 듣지 않고, 섬세한 차이를 분별할 줄 모르는 나와는 영 인연이 없는 단어인 줄 알면서도 그랬다. 그래서 판소리를 들을 때 이 귀명창들의 추임새를 듣는 것이 무척이나 좋은 것이다. 내 뒤에 앉은 걸로 추정되는 중년 여성인 귀명창은 적절한 대목마다 '아야'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모두 '아야'이기는 했지만 한 번도 똑같지 않은 '아야'였다. 어찌나 절묘하고 맑은 음색이었는지 귀가 즐거웠다. 그래서 판소리를 들으며 이 대목쯤에서는 또 '아야'가 한 번 나오지 않을까라고 예상하며 판소리를 들었다. 예상은, 계속 빗나갔다.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무엇'이었던 걸 보면서 집중하고 있자니 쉽지 않았다. 일단 거슬리는 것들이 있었다. 착하기는 하지만 주책바가지인 심봉사를 극진히 '뫼시는' 곽씨부인(심청 모친)을 보면서 뭐 저리 현숙할 것까지 있나 싶었고, 심청을 낳기로 한 이유는 사후에 제사를 지내 줄 혈육이 필요했음이고, 가정 경제를 위한 일은 모두 어질기 짝이 없는 곽씨부인이 도맡아 한다. 한 여성을 착취해 가정이 굴러가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와중 알던 가락들이 나와 주었다. 뭐 이런. "자네가 죽어도 이 길이요, 내가 죽어도 이 길이로다." "아이고, 정신도 말끔허고, 숨도 잘 쉬고, 아픈 데 없이 잘 죽는다."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계속 보고 있자니 안 보이던 부분들이 새로 보였다. 장님인 심봉사를 꼬드겨 공양미 삼백 석을 불전에 바치게 한 시주승의 고뇌라든가 공양미 삼백 석을 주고 심청을 바다에 집어넣은 후 어업을 나가는 뱃사람들의 죄의식 같은 것이. 심청이 바다로 입수한 뒤 배에 있던 모든 사람은 운다. 선장도, 선원도, 밥 짓는 이도.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장사도 좋거니와 우리가 연년이 사람을 사다가 이 물에 넣고 가니, 우리 후사가 어이 좋을 리가 있겠느냐?" 그럴 줄 알면서도 이 뱃사람들은 노를 젓는다. 먼 바다로 나간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일이 있으므로. 그들에게 달려 있는 입들, 그러니까 식구들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므로. 시주승 또한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다.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 시주를 받는 것이므로 염서든 폭한이든 길을 나선다.

심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은 실로 놀라운 마무리였다. 다시 이생으로 환생, 왕비가 된 심청이 아버지를 찾기 위해 맹인 잔치를 벌인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심봉사는 청이의 말이 믿기지가 않아서, 꿈을 꾸는 건지 죽은 건지 확인하기 위해서, 딸의 얼굴을 보기 위해 눈을 뜬다. 아주 아주 격렬한 의지로, 답답함을 떨쳐버리며, 두 눈을 끔쩍끔쩍 하다 눈을 번쩍 뜬다. 더 놀라운 것은 이때부터다. 맹인 잔치에 초대된 모든 맹인이 눈을 뜬다. 길을 다니던 맹인이 눈을 뜬다. "가다 뜨고, 오다 뜨고, 서서 뜨고, 앉어 뜨고, 실없이 뜨고, 어이없이 뜨고, 화내다 뜨고, 울다 뜨고, 웃다 뜨고, 떠보느라고 뜨고, 시원히 뜨고, 놀다 뜨고, 자다 깨다 뜨고, 졸다 번뜻 뜨고, 날짐승과 길짐승에 이르기까지 일시에 눈을 떠서 광명 천지가 되었구나."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통쾌한 마무리였다. 울던 사람들은 웃다가 다시 웃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심청가'는 희비극이었다. 그것도 아주 폭발적인. 울다 웃다 울다 웃다 마침내 사람을 붕붕 띄어버리는. 손짓 하나만으로도 마음을 철렁이게 하는 안숙선 명창이 부른 그날의 마지막은 이랬다. "여러 귀빈님 만만세. 오늘 오신 손님도 만만세. 천천만만세를 태평으로만 누리소서. 얼씨구 절씨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