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 사는 임혜경(가명·57)씨는 2005년 왼쪽 유방에 암이 생겨 첫 수술을 받았다. 수술실로 향하는 이동식 침대 위에서 벗어둔 신발을 보며 '다시 신발을 신고 병원을 나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힘들게 암의 첫 공격을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2015년 반대쪽 유방에 다시 암이 생겼다. 종양 크기도 10년 전보다 컸지만 다행히 조기 발견했다. 임씨는 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국민 서른 명에 한 명(3.4%)이 잠재적으로 암과 함께 살아가는 '암 유병자'라고 보건복지부가 27일 발표했다. '2016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분석한 결과다.

◇암은 불치병 아닌, 또 하나의 '만성질환'

복지부에 따르면, 정부가 전국 단위 암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9년 이후 암에 걸린 사람 중 2017년 1월 1일까지 생존이 확인된 '암 유병자'가 총 174만명이었다. 이 숫자는 국내 만성질환 환자 중 심장질환 환자(146만명)보다 많고, 당뇨 환자(286만명)보다는 적은 규모다. 암 치료 기술이 발달하면서, 암이 빠른 속도로 '불치병'의 영역에서 빠져나와 '빨리 찾아 평생 관리하는 또 하나의 만성질환'으로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다.

실제로 암 진단 후 5년 넘게 생존하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 2016년 사상 처음으로 암 유병자의 절반(52.7%)을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암 진단 후 5년 이상 생존하면 완치로 판정한다. 나이와 성별이 같을 때 일반인과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을 비교한 '암 환자 5년 상대 생존율'도 2005년 54%에서 2016년 70.6%로 올랐다. 5년 상대 생존율이 100%가 되면 암환자가 일반인과 똑같이 살아간다는 의미다. 이은숙 국립암센터 원장은 "과거에 비해 진단 기술, 수술 기법 등이 발달해 암 환자의 생존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며 "이제는 환자들도 암에 걸렸다고 막연하게 불안해하지 않는다"고 했다.

◇5대암 5년 상대 생존율 해외보다 높아

우리나라 사람이 기대수명(82세)까지 살 때 암에 걸릴 확률은 36.2%다. 남자는 5명 중 2명(38.3%), 여자는 3명 중 1명(33.3%)이 살다 보면 암에 걸린다는 뜻이다. 동시에 암과 싸우는 기술도 크게 진전됐다. 전문가들은 "이제 암은 당뇨·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이 됐다"고 했다. 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기술도 좋아졌고, 완치가 안 되더라도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위암(75.8%), 간암(34.3%), 전립선암(93.9%), 폐암(27.6%)은 11년 전인 2005년에 비해 5년 상대 생존율이 10%포인트 이상 올라갔다. 5대암(위암·대장암·간암·유방암·자궁경부암)의 5년 상대 생존율은 미국, 캐나다, 일본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이다. 위암의 5년 상대 생존율(75.8%)은 미국(32.1%)의 2배 이상이다.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가장 큰 힘은 '조기 진단'이다. 정훈용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1980년대만 해도 위암이 조기에 발견되는 비율이 15% 정도였는데 최근엔 75%"라고 했다. 치료 기술도 발달하고 있다. 김윤준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간암의 경우, 암에 연결된 혈관에 항암제나 방사선 물질을 넣고 혈관을 막아주는 '색전술' 등이 발전해, 예전에는 6개월을 못 넘길 환자들이 수년간 생존하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표적항암제·면역항암제 등 암과 싸울 무기도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