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래 산업2부장

104년 전인 1914년,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포드 근로자의 하루 임금을 당시 자동차 업계 평균의 2배로 올려 미국 산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포드의 경영진이 온종일 회의 끝에 25센트 인상, 50센트 인상을 건의했지만 줄줄이 퇴짜를 놓고 두 배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하루 근무시간도 9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였다. 이 소식을 접한 신문사 편집진의 첫 반응은 "헨리 포드가 미쳤다"는 것이었다.

헨리 포드가 최저임금을 단숨에 5달러로 올린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그는 양질의 자동차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려 했다. 그러려면 근로자들이 끊임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의 반복 작업을 견딜 수 있어야 했다. 둘째는 근로자의 소득을 끌어올려 자동차 판매를 확대하려 했다. 근로자가 곧 고객이라는 관점에서였다. 그의 최저임금 인상은 적중했다. 임금 인상을 단행한 그해(1914년), 포드는 다른 자동차 회사의 판매량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30만대의 '모델T'를 판매했다. 이어 1915년 50만대, 1921년에는 100만대를 넘어섰다. 근로자 임금 인상이 생산성 향상과 구매 증가로 이어진 것이다.

1929년 대공황이 닥치자, 포드는 최저임금을 하루 7달러로 또다시 인상했다. 임금 인상이 경기 회복을 이끌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최저임금 인상이 먹혀들지 않았다. 포드 자동차 생산량은 1929년 150만대를 정점(頂點)으로 이듬해 110만대, 1932년에는 21만대까지 급감해 근무시간을 줄이고 직원의 3분의 2를 해고해야 했다.

당시 허버트 후버 대통령도 임금 삭감을 금지했다. 그 역시 헨리 포드처럼 힘겨운 시기에 근로자들의 임금을 깎으면 국민이 더 큰 고통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또 임금을 올려야 수요가 살아날 것으로 믿었다. 후임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더 나아가 임금과 제품 가격을 동시에 통제했다. 루스벨트는 각종 법안을 제정해 노조의 교섭권을 강화했고 기업가들을 '경제 왕당파'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하지만 임금을 감당하지 못한 기업인들은 근로자들을 무더기로 해고했다. 정책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로 투자를 극도로 기피하고 외국으로 떠나기 바빴다. 이런 탓에 1933년 25%까지 치솟은 실업률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두 자릿수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시장주의자들은 후버와 루스벨트의 최저임금 인상을 대공황 시절 최악의 정책으로 꼽는다. 차라리 루스벨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면 침체기가 10년 넘게 계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포드의 최저임금 인상이 왜 극단적으로 다른 결과를 낳았을까? 포드가 첫 최저임금을 인상했을 때 미국은 혁신의 시기였다. 자동차와 전기가 보급되고 냉장고·진공청소기·라디오 같은 가전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역사상 유례없는 번영을 이끌었다. 1920년대 10년간 미국 경제 규모가 40% 이상 커졌고 10년간 단 한 번도 실업률이 완전고용 상태를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전 세계 주식시장은 최고점에서 20% 이상 하락한 약세장에 진입했고 각종 경제 지표도 침체기에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게다가 영세 자영업자의 비중이 25%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고용 구조는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펴기에는 턱없이 후진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른 정책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경제 시스템에 엄청난 균열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현실에는 눈감고 우리가 하면 다르다는 생각 역시 위험한 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