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치료제 타미플루를 복용한 여중생이 12층 아파트에서 추락해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유족은 "타미플루로 인한 환각 증상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겨울철 독감이 유행하면서 환각 등 신경정신계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타미플루에 대해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아·청소년이 이 약을 먹은 경우 보호자가 최소 이틀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지난 22일 오전 5시 30분쯤 부산 한 아파트에서 A(13)양이 쓰러져 숨져 있는 것을 부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A양 가족은 경찰에서 "감기약을 먹고 잠들었을 아이가 방 안에 보이지 않고 창문이 열려 있어 살펴보니 1층 화단에 추락해 있었다"고 말했다. 가족 등에 따르면 A양은 지난 21일 오전 동네 소아·청소년과 의원에서 A형 독감으로 5일치 타미플루와 해열제를 처방받아 먹은 뒤 학교에 갔다. 이날 학교에선 학생회장 선거가 있었고 A양은 부회장에 출마했다. A양은 먹은 약을 모두 토하는 등 몸 상태가 계속 좋지 않아 선거에서 정견 발표만 하고 귀가했다.

A양은 이후 담임교사와 친구들로부터 '부회장에 당선됐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과 함께 축하 파티를 하고 오후 10시쯤 두 번째 약을 먹었다. 잠을 자러 방으로 들어간 것은 22일 0시쯤이었다. A양 가족은 "아이가 자겠다며 방에 들어갔다가 20분 뒤 다시 나와 '천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말하는 등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추락에 의한 장기 손상으로 사망했다는 검안의 소견으로 미뤄 A양이 12층 자신의 방에서 뛰어내려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숨진 A양의 혈액을 채취해 국과수에 검사를 의뢰하고 타미플루 관련 내용을 관할 보건소 측에 알아보고 있다. 또 A양의 교우 관계 등 학교생활에 대해 조사하는 등 사인과 연관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조사 중이다.

A양이 복용한 타미플루는 과거에도 환각 증상 등 부작용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소아·청소년 환자의 의심 신고가 많다. 타미플루는 국내 유일한 항바이러스제인 오셀타미비르 성분으로 구성돼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오셀타미비르 성분의 약을 먹은 환자는 경련과 환각, 초조함, 떨림 등 신경정신계 이상 반응을 나타낼 수 있다. 의사가 처방할 때도 합병증이나 정신분열증 등 과거 병력, 증상의 심각성 등을 고려해 처방하게 돼 있다.

타미플루 복용과 이상 행동 부작용 간의 인과관계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식약처에 접수된 타미플루 부작용 신고 건수는 2012년 55건에서 2016년 257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엔 164건, 올해는 지난 9월까지 206건이 접수됐다. 증세는 주로 구토·설사·어지러움 등이다. 헛것을 보거나 듣는 환각과 관련된 부작용이 2014년부터 지난 9월까지 총 12건 보고됐으며, 이 중 1건이 추락 사망 사고였다. 정신적 불안 증세도 6건 있었다. 대부분 소아와 청소년이었다.

타미플루 부작용 논란이 먼저 불거진 일본에서도 2000년대 초반 타미플루를 복용한 10대 청소년들이 추락해 숨지거나 차도에 뛰어들어 사망한 사건이 잇따랐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일본에서 타미플루를 먹은 128명이 이상 행동 증세를 보였고, 이 중 8명이 건물에서 떨어지거나 도로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8명 중 5명은 10대였다. 일본은 지난 2007년 독감 증세가 심각한 경우를 제외하고 만 10~19세 미성년자에 대한 타미플루 처방을 금지했다. 이후 후생노동성 조사 결과 타미플루와 이상 행동 간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아 지난 8월 처방 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논란이 일자 식약처는 24일 의사·약사 등 의료인들에게 처방·투여 시 주의 사항을 알리는 '안전성 서한'을 배포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독감은 일반 감기와는 달리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라 함부로 약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며 "약을 먹은 아이가 헛것을 보거나 듣는 경우, 없는 물건이 만져진다거나 냄새가 난다고 하는 경우, 안절부절못하거나 잠을 못 자는 경우에는 즉시 의사에게 알리고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