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조규광(92·사진) 전 헌재소장이 24일 오전 별세했다. 1926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제3회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뒤 1951년 판사에 임용됐다. 1966년 서울민사지법 수석부장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은 뒤 22년간 재야 법조인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1981년 서울통합변호사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1987년 개헌으로 헌재가 창설된 뒤 그는 이듬해 당시 노태우 대통령 지명으로 초대 헌재소장에 임명됐다.

당시만 해도 법조인 중에서도 헌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이들이 있을 때였다. 그만큼 헌재 위상이 높지 않았다. 그는 1989년 현충일 국립묘지 행사에 헌재소장 자리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전날 따로 참배하기도 했다. 그런데 헌재소장 의전(儀典)에 소홀하던 정부가 갑자기 3부 요인 옆에 헌재소장 자리를 마련했다는 얘기를 듣고 행사에 참석해 결과적으로 두 번 헌화하기도 했다.

그랬던 헌재의 기틀을 그가 하나하나 다졌다. 훗날 그는 "취임했더니 재판관 9명과 헌재 전신인 헌법위원회 사무실, 예산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며 "헌재 청사(서울 종로구 재동)를 구하는 것부터 직제, 주심(主審) 결정 방법, 좌석 배치까지 일일이 내 손으로 정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최고 헌재로 꼽히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를 모델로 삼아 직접 독일에서 재판 시스템을 배워오기도 했다.

그가 이끈 헌재 1기 재판부는 6년 동안 30건 넘는 위헌 결정을 적극적으로 내려 헌법 재판을 정착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어느 날 청와대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고는 "선약이 있다"며 거절했다는 일화도 있다.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관을 지낸 한 법조인은 "지금의 헌재가 있기까지 조 소장의 공(功)이 절반을 넘는다"고 했다. 헌재 고위 관계자는 그에 대해 "헌재의 전설 같은 분"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공로로 지난 8월 헌법재판소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당시에도 병환이 깊어 아들이 대신 수상했다. 유족으로 아들 두현(사업)·성현(사업)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2258-5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