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론드리 출신의 실력파 셰프… 한국 해산물에 반하다
"한국인 쫄깃한 맛 좋아하고, 짠 맛과 신 맛 싫어해"
달걀찜·홍어·다슬기 등 재해석… "낯설지만 익숙한 맛"

서울 역삼동에 최근 오픈한 레스토랑 ‘에빗’ 오너셰프 조셉 리저우드에게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자 소년처럼 수줍게 웃었다.

미국 최고 레스토랑이자 프랑스 미쉐린 가이드로부터 최고 영예인 별 3개를 획득한 ‘프렌치 론드리’(French Laundry), 영국 런던 파인다이닝(고급 외식)을 대표하는 ‘레드버리’(Ledbury·미쉐린 2스타)와 ‘톰 앳킨스’(Tom Aikens·미쉐린 1스타), ‘키친 W8’(미쉐린 1스타), 2010·2011·2012·2014년 ‘세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1위를 차지한 덴마크 코펜하겐 ‘노마’(Noma·미쉐린 2스타)···.

세계 미식의 중심에서 호주 출신 요리사 조셉 리저우드(Lidgerwood·30)가 쌓아온 이력은 화려하다. 그런 그가 아직은 변방이랄 대한민국 서울에 12월 초 자신의 레스토랑 ‘에빗(Evett)’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만으로 요리한 음식에 한국 전통주를 곁들여 낸다. 세계 어떤 고급 레스토랑에도 취직할 수 있고 어떤 도시에서도 식당을 오픈할 수 있었을텐데, 왜 하필 서울이었을까. 19일 셰프 리저우드를 서울 역삼동에 있는 그의 식당에서 만났다. 에빗은 그의 가운데 이름이다.

서울에서 레스토랑을 내기로 결심한 건 한국인 아내 때문인가.
"아내와는 상관없다(웃음). 2016년 팝업 레스토랑 그룹 '원 스타 하우스 파티(One Star House Party)'를 동료 요리사들과 결성했다. 세계 각국에서 팝업 레스토랑을 하는 것도 재밌지만 문화와 음식을 배우고 싶었다. 일 년 동안 뉴욕, 샌프란시스코, 타이페이, 호치민, 방콕, 베이징,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서울 등 11개국 16개 도시에서 팝업 레스토랑 이벤트를 벌였다. 그때 한국의 식재료와 식문화에 깜짝 놀랐다. "

16개 도시 중 서울이 왜 당신에게 그렇게 특별했나?
"런던과 뉴욕, 샌프란시스코에 좋은 베트남, 태국, 중국 음식점은 있다. 하지만 한식당은 비빔밥이나 바비큐(불고기, 갈비)와 소주를 파는 곳밖에 몰랐다. 팝업 레스토랑 하러 서울에 와보니 식재료가 엄청나게 다양했다. 특히 해산물이 환상적이었다. 수산시장에 가보니 2주마다 제철 생선이 바뀌더라. 된장, 간장, 장아찌 등 발효음식도 기가 막혔다. 이렇게 뛰어난 한국 식문화가 이토록 알려지지 않았다니 안타까웠다. 한국 식재료로 내가 어떤 요리를 할 수 있을 지 도전해보고 싶었다."

원래 도전을 즐기는 편인가.
"그렇다. 요리는 항상 무언가를 극복(overcome)하려고 애쓰는 과정이고, 음식은 그 노력의 결과물이다. 물에 빠져 죽지 않으려고 젖 먹던 힘을 다해 허우적거리는 것, 그것이 요리 같다.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스스로를 극한으로 밀어붙여 더 나은 요리사로 발전한다. 그래서 요리는 언제나 지루하지 않다."

언제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했나.
"12살 무렵 부모님이 '커서 뭐 할 거니?'라고 물었다. 호주에선 12, 13살 때 진로를 대강 정한다. 어렸지만 사무직은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에너지가 넘쳐서 학교에서도 얌전히 책상에 앉아있지 못했다. 반면 요리는 즐거웠다. 어머니를 도와 음식 만드는 게 재밌었다. 호주에서 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나이인 14살부터 동네 제과점에서 빵 굽고 도넛을 튀겼다."

레스토랑 에빗에서 식사 마무리로 차와 함께 내는 과자들. 리저우드가 서울 황학동 골동품시장에서 찾아낸 한옥 문짝을 접시로 사용한다. 숟가락에 담긴 건 젤라틴으로 감싸 사탕처럼 만든 식혜로, 입에 넣고 깨물면 터져나오게 했다. 숟가락 양옆으로 ‘미숫가루 마카롱’과 밤을 삶고 으깨 꿀로 버무린 전통 한과 ‘율란’이 놓였다.

리저우드는 고향인 호주 태즈메니아에서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주방에서 일할수록 요리에 빠져들었다. 런던에서 일한 5년은 힘들었지만 요리학교에서 배운 테크닉을 진정한 자신의 것으로 만든 시기였다. 2016년 일 년간 팝업 레스토랑 프로젝트를 진행한 리저우드는 요리를 더 배우고 싶어서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있는 프렌치 론드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국 음식과 재료를 잊지 못했다. 결국 2017년 서울로 돌아와 레스토랑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4번의 팝업 행사를 진행하며 서울의 외식시장을 파악하고, 틈나는대로 전주·목포·강릉·청주·제주 등 전국을 다니며 식재료를 생산하는 농장을 방문했다.

굳이 농장에 직접 가볼 필요는 없지 않나.
"100% 현장을 가서 봐야 한다. 상자에 담겨 배달된 재료에는 존중이나 소중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농부를 만나 어떻게 재배하는지 보고 들어야 재료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내일은 우리가 쓰는 갓이 재배되는 전남 여수에 간다. 갓김치도 먹어볼거다. 현지에서 재료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보면서 영감을 얻는다. 그리고 나만의 요리를 창작한다."

손님들이 에빈의 음식이 "낯설지만 익숙한 모순의 맛"이라더라.
"익히 아는 재료나 음식을 새롭게 재해석해서 그럴 것이다. 예를 들어 '에그 커스터드'는 달걀찜을 순두부처럼 만들었다. 달걀찜의 맛은 좋아하지만 순두부의 부드럽고 매끈한 식감을 사랑한다. 다슬기는 프랑스 달팽이요리처럼 버터와 마늘에 볶았다. 아마 한국 손님들은 다슬기를 탕으로만 먹어봤지 볶아 먹기는 처음이었을거다."

그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
"한식에 대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없어일거다. 한국인 요리사들은 어려서부터 먹던 재료나 음식이라 '이런 맛이라야 한다' '저렇게 요리해야 한다'는 개념이 머리에 박혀 있지만, 나는 그런 게 없어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것같다. 이번 주에는 아귀 간을 소금에 절였다가 전통주에 재워서 낼 거다."

식당을 해보니 한국인 손님은 어떤 특징이 있던가.
"쫄깃한 식감을 선호하는 게 신기하다. 서양에선 음식이 쫄깃하면 요리를 잘못했다고 여긴다. 묵을 처음 맛봤을 때 '세상에 이런 식감의 음식이 있나' 놀랐다. 소금에 유난히 예민하다. 서양인은 짭짤해야 맛있다고 여기는데, 한국에선 조금만 짜면 컴플레인이 들어온다. 신맛에도 더 예민하다. 런던이나 뉴욕에서 요리할 때보다 신맛을 훨씬 줄였다."

특별히 좋아하는 한식이 있나.
"국물 음식은 뭐든 좋다. 설렁탕, 곰탕, 삼계탕, 칼국수, 찌개··· 한국의 탕 요리는 어떤 걸 시켜도 실패하지 않는다."

앞으로 계획은 뭔가.
"조금 있으면 봄이다. 한반도에서 사계절 재료들을 한 번은 훑어본 셈이다. 지금까지 맛보고 사용한 재료는 모두 기록해서 자료화했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완벽한 자료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한국에 얼마나 위대한 재료와 음식들이 있는지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