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차관 회의를 열어 근로자가 실제 일하지 않은 유급 휴일도 최저임금 산정 때의 근로시간에 포함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다음 주 국무회의에서 통과되면 내년 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최저임금 지급 부담이 법정액보다 20~40%나 폭증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보완'하겠다고 말한 지 불과 사흘 뒤다. 이 정부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만 같다.

최저임금을 2년 새 29%나 인상하는 바람에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8350원까지 올라간다. 여기에다 시행령 개정으로 유급 휴일도 근로시간에 포함되면 사업장 대부분의 실제 최저임금은 그보다 약 20% 높은 1만20원이 된다. 이 정부의 애초 공약인 '시급 1만원' 목표를 이미 초과하게 되는 것이다. 토·일요일 이틀을 유급 휴일로 정한 일부 기업에선 최고 40%까지 오르는 곳도 생기게 된다. 중소기업이나 영세 상공인들이 이걸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최저임금법 어기는 범법자가 되거나, 직원·종업원·알바 줄이고 내보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관 회의 직후 경총은 성명을 내고 "시행령 개정을 철회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고용부는 "철회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날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을 덜어주겠다며 서울시가 도입한 카드 수수료 0원의 '제로페이'가 시범 시행에 들어갔으나 호응은 미미했다. 서울시가 대대적 홍보에 나서면서 총력전을 펼쳤지만 제로페이에 가입한 자영업·소상공인 가맹점은 전체의 4.5%에 불과했다. 자영업 현장에선 이미 신용카드 수수료가 크게 낮아진 상황에서 굳이 제로페이를 쓸 이유가 없다고 한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이라는 본질은 놓아두고 미봉책만 내놓으니 국민 세금은 세금대로 쓰면서도 부작용을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부산 최대 아파트 단지에서 근무하던 경비원 110명 가운데 98명이 사표를 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입주자대표회의가 내년 최저임금 추가 인상 부담을 줄이려 방범 카메라 등 무인 경비 시스템을 도입해 경비원 근무시간을 줄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월급이 185만원에서 110만원으로 줄어든다. 떠나는 경비원들은 "가장인데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으로는 일할 수 없다. 직장을 찾아 엄동설한 칼바람 맞으며 헤맬 생각 하니 서글퍼진다"는 글을 단지 곳곳에 붙였다. 이런 일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주 52시간 근무제를 실시하면서 '저녁이 있는 삶'을 말했다. 저녁은 있으나 일자리와 돈이 없는 삶은 생각해본 적 없을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은 일자리가 튼튼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강성 노조의 보호를 받는 노조원들은 일 덜하고 월급 더 받게 된다. 하지만 임시·일용직 경제 약자(弱者)들에게는 남의 나라 일이다. 지금보다 월급 더 받지 않아도 일하겠다는 사람들, 연장 수당 더 받아 처자식 부양해야 하는 사람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다. 이것이 이 정부 들어 빈부 격차 확대로 나타났다.

정부는 정책 실패로 구멍난 곳마다 국민 세금으로 땜질하고 있다. 막대한 세금이 밑 빠진 독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들이 아우성치자 임대료, 카드 수수료 탓을 한다. 이게 왜 카드 업계 잘못인가. 정부 지시로 1조원 넘게 수익이 줄어들게 된 카드사들엔 구조조정 칼바람이 맴돌고 있다.

문 대통령은 최근 최저임금 정책 보완과 함께 많은 반성의 말을 쏟아냈다. "산업 정책이 없다는 비판에 대해 정부의 뼈아픈 자성이 필요하다" "(경제 정책은) 국민 공감 속에서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도 했다. 이것이 마음에 없는 겉연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날 차관 회의가 잘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