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일부만 보고, 나머지는 폐기...비위 혐의자 일방 주장"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과 관련해 19일 추가적인 의혹이 제기됐다. 자유한국당은 특감반의 첩보 보고서 목록을 이날 공개하면서, 여야 정치인, 기업인, 언론, 교수 등 민간에 대한 사찰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한국당은 "특감반 사태는 문재인 정부의 민간인 사찰과 정권실세 비리 은폐 의혹이 드러난 사건"이라며 청와대의 해명을 요구했다.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은 이날 오후 늦게 기자들과 만나 한국당 측의 추가 의혹 제기에 대해 해당 보고서 중 일부는 윗선에 보고됐지만, 일부는 특감반 사태 폭로자인 김태우 수사관이 자체적으로 생산한 보고서로 보고되지 않고 폐기됐다는 취지로 말했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태우 수사관이 특감반 활동 시절 컴퓨터로 작성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첩보 보고서 목록을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파일명은 작성일, 작성자 이름, 문서 제목으로 이뤄져 있었다. 100건이 넘는 전체 문서 중 한국당 측은 11건의 문서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청와대 민간인 사찰 등의 추가 제보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관련 내용을 밝혔다.

해당 문서는 △전 기획재정부 장관 최경환 비위 관련 첩보성 동향 △고건 전 총리 장남 고진 비트코인 사업 활동중 △한국자산관리공사 비상임이사 송○○, 홍준표 대선자금 모금 시도 △방통위 고○○ 상임위원,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갈등 △박근혜 친분 사업자의 부정사업 통한 공공기관 예산 수령 △MB정부 방통위 황금주파수 경매 관련 SK측에 8천억 특혜 제공 △조선일보 BH(청와대)의 홍○○ 회장의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 검토 여부 취재중 △조선일보 취재 내용 중 유○○ 의원 재판거래 혐의 △진보교수 전○○ 사감으로 VIP 비난 등이다.

한국당은 각 파일들의 내용 전체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당 측은 각 문서들이 ‘민간 기업 관련 사찰’,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찰’, ‘민간 기업 관련 사찰’, ‘전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 관련 사찰’, ‘대학교수 사찰’ 등과 관련된 문서라고 설명했다. 한국당 측은 제보 경위, 출처 등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특별감찰관의 직무범위 등을 규정한 대통령비서실 직제 7조2항을 보면, 특감반의 감찰 대상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행정부 소속 고위 공직자’, ‘공공기관·단체 등의 장 및 임원’, ‘대통령의 친족 및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자로 정해져 있다. 감찰 업무 또한 ‘비리 첩보를 수집하거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에 한정한다’고 명시돼있다. 한국당 측이 공개한 첩보 보고서 목록에 따르면 이는 민간인 불법사찰 소지와 함께 특감반이 직무범위를 넘어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나 원내대표는 "리스트만 보면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을 마구잡이로 한 것으로 보여진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 청와대가 이제 답을 해야 하는데, 청와대는 답은커녕 오락가락하고 궁색한 해명만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나 원내대표는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의혹을 일축하고자 하는 의도 외에도 정권 실세의 비리 의혹을 덮으려는 시도가 보인다"며 "급기야는 오늘 청와대가 김태우 수사관의 입을 막으려고 고발까지 했다"고 했다.

나 원내대표가 19일 공개한 특감반 민간인 사찰 의혹 관련 추가 제보 내용 중 일부.

나 원내대표는 "(청와대가) 국기문란과 조직적 비리 은폐 의혹이 있는 권력형 사건에 대해 유전자를 운운하면서 오만한 태도로 일관하는데,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여당도 청와대를 감싸려고 하지 말고 국회 운영위원회를 소집해야 한다"고 했다. 나 원내대표는 "검찰이 청와대의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에 대해 수사하기는커녕 김태우 수사관에 대해 수사의 칼을 휘두르려고 한다면 결국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 또 진실을 밝히는 게 미진하면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나 원내대표는 "자성없는 오만은 부패의 시작이고 추락의 시작"이라며 "청와대는 더 이상 진실을 숨기려고 하지 말고, 답해야 한다. 명확하게 답을 해야 할 주체는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했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오후 늦게 한국당의 문건 목록 공개에 대해 해명했다.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은 "특감반원은 지시를 받고 첩보를 수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주제를 정해 첩보를 수집하므로, 특별한 경우 아니면 아무 지시 없이 자신이 생산한 문건임을 강조한다"며 해당 목록의 보고서 중 일부는 윗선에 보고됐지만, 일부는 보고되지 않고 폐기된 문서라고 말했다. 박 비서관은 의혹이 제기된 보고서에 대해 건별로 무엇이 누구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설명하기도 했다.

박 비서관은 "저는 문재인 정부 초대 반부패비서관으로서 명예를 걸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왔다"며 "비위 혐의자의 일방적 주장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