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우리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유럽연합(EU)이 17일 우리 정부에 "한국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 협약을 비준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며 이 문제를 협의하자고 공식 요청해왔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미국·호주 등 15개 안팎 국가 또는 국가연합과 FTA를 체결했는데, 노동 분야에서 공식적 항의를 받고 협의 절차에 들어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노동기구는 그동안 각국과 맺은 189가지 협약 가운데 8건을 '핵심 협약'으로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 중 차별과 아동 노동을 금지하는 네 항목만 비준하고, 결사의 자유와 강제 노동에 관련된 네 항목은 비준하지 않고 있다. 우리 법은 ▲해고자, 실업자, 5급 이상 공무원의 노조 가입을 금지하고 ▲징병 대상자들이 군에서 사회 복무 요원 등 국방 이외 업무도 맡을 수 있게 허용하고 있는데, 그와 충돌한다는 이유다.

그동안 EU는 "한국이 근로자들의 노동권을 충분히 보장해 주지 않아, 유럽보다 노동력을 값싸게 동원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지속적으로 항의해왔다. 우리가 유럽 수준으로 노동권을 보장해야 양쪽 상품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논리다.

EU의 행보는 문재인 정부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정부는 핵심 협약 비준을 추진한 반면, 재계와 보수 진영은 반대해왔다. 이날 고용노동부는 EU의 항의를 보도 자료로 정리해 배포했다. 고용노동부 김대환 국제협력관은 "우리나라가 계속 비준을 거부하면 국가 위상이 실추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