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59) 감독이 베트남의 국민 영웅으로 떠오르기 전까지 국내 팬들은 그를 2002 한일 월드컵 대표팀 코치로 기억하고 있었다. 대표팀 훈련장에서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반바지 차림으로 선수들과 뒹굴며 함께 땀 흘리고,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는 모습이 '코치 박항서'를 대표하는 이미지였다.

베트남 선수들이 15일 박항서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헹가래는 3번이 보통인데, 선수들은 10번 이상 박 감독을 들어 올리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선수들은 아버지처럼 따르는 박 감독과 기념 촬영을 하고 포옹하며 우승의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그는 선수 시절부터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가대표로는 1경기 출전이 전부였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후광에 힘입어 그해 가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지만 동메달에 그쳤다. 이후 경남·전남·상무 등 K리그 사령탑으로 9시즌을 보냈다. 상무에서 K리그2(2부 리그) 우승을 두 차례 일궜으나 전술적인 면이 크게 부각된 적은 없었다.

마법을 부리는 전술가

'마법을 부리는 위대한 전략가.' 베트남 대표팀이 스즈키컵 결승에 오르자 현지 매체 '소하'는 이렇게 극찬했다. 박 감독은 작년 10월 베트남 사령탑에 부임한 후 절묘한 전술과 선수 기용으로 주목받은 데 이어 이번 스즈키컵 결승전에서도 탁월한 용병술을 선보였다.

그는 11일 결승 1차전(2대2 무승부)에서 예상을 깨고 벤치 멤버인 응우옌후이흥과 하득찐을 선발로 기용했다. 응우옌후이흥은 선제골로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2차전에선 1차전에서 휴식을 취한 선수들이 승리를 일궜다. 박 감독이 1차전 때 체력 안배 차원에서 쉬게 했던 33세의 베테랑 스트라이커 응우옌아인득이 결승골을 뽑아냈다. 응우옌아인득은 응우옌꽝하이가 상대 진영 왼쪽에서 올려준 크로스를 왼발 발리슛으로 연결했다. 공은 말레이시아 골키퍼의 손을 맞고 골망을 흔들었다.

베트남식 포메이션 완성

박 감독은 베트남식 3-4-3 포메이션을 구축해 값진 성과를 남겼다. 그가 처음 부임했을 때 베트남 대표팀은 4명의 수비수를 세우는 포백 전술을 쓰고 있었다. 박 감독은 "베트남의 포백은 몸에 맞지 않는 옷과 같았다"며 "베트남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술을 연구했다"고 했다.

朴감독“이영진 수석코치는 내 브레인” - 벤치에서 스즈키컵 결승 2차전을 지켜보는 박항서(왼쪽) 감독과 이영진 수석코치.

박 감독은 베트남 선수들이 동남아시아권에선 순발력과 민첩성, 스피드가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눈여겨봤다. 발재간도 있었다.

박 감독은 공 컨트롤과 패스가 좋은 수비수들을 후방에 배치해 공격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다소 투박할지라도 몸싸움이 좋은 선수들을 주로 최후방 수비수로 활용했던 과거와 달리 수비수부터 공격 전개에 나선 것이다.

대신 투지가 좋고 수비가 뛰어난 선수는 중앙 미드필더로 둬 상대 공격을 저지하는 역할을 맡겼다. 박 감독은 "이 전술의 핵심은 양쪽 측면 미드필더"라며 "베트남엔 발 빠르고 활동량이 많은 선수가 꽤 있다. 이들이 전방부터 후방까지 부지런히 뛰면서 수적 우세를 이끌어낸다"고 말했다.

'박항서 매직' 도우미

박항서 감독과 함께 베트남으로 온 이영진(55) 수석코치는 K리그 지도자 시절 전략가로 이름이 높았다. 박 감독은 베트남 매체 Vn익스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영진 수석코치는 내 브레인"이라며 "나는 이 코치가 제시한 여러 방안 중 하나를 결정할 뿐"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이 코치를 신뢰한다.

배명호(55) 피지컬 코치는 체계적인 체력 훈련 프로그램으로 '베트남 선수들은 체력이 약하다'는 편견을 깼다. 상체 근력을 강화한 베트남 선수들은 키가 작다는 약점을 몸싸움으로 이겨냈다. 결승전에서도 체격 조건이 우세한 말레이시아를 맞아 밀리지 않았다. 지구력을 앞세운 풍부한 활동량으로 이번 대회 내내 상대팀을 압도했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의무팀장으로 '4강 신화'에 힘을 보탠 최주영(66) 재활 트레이너는 박 감독의 요청을 받고 베트남으로 날아와 공식 직함 없이 선수들의 재활과 부상 예방을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