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11시 40분(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클 펜스 부통령,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와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가 둘러앉았다.

"정부를 셧다운(shutdown·업무정지)시켜선 안 된다. 그런데 당신은 셧다운을 원하고 있다."(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노, 노, 노, 노, 노. 척, 지난번엔 당신이 (예산안에 합의 안 해) 셧다운시켰잖나."(트럼프)

"노, 노, 노. 당신은 무려 스무 번이나 '장벽(예산)을 얻지 못하면 정부를 셧다운하겠다'고 말했다."(슈머)

"그래? 뭘 알고 싶나? 우리가 원하는 국경 장벽을 얻을 수 없다면 난 정부를 셧다운시킬 거다."(트럼프)

예산안 처리 시한(21일)을 열흘 앞두고 만난 트럼프 대통령과 야당인 민주당 대표들은 한 치도 지지 않고 17분간 설전을 벌였다. 당초 비공개로 진행하기로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기자들도 들어오라"고 하면서 외부로 생생하게 공개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트럼프는 이런 긴장감이 TV에 좋은 볼거리를 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했다.

11일(현지 시각) 미 백악관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에서 둘째) 대통령과 척 슈머(맨 오른쪽)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맨 왼쪽)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손짓하면서 대화하고 있다. 마이크 펜스(왼쪽에서 둘째) 미국 부통령은 눈을 감고 앉아 있다. 예산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슈머·펠로시 원내대표는 방송 카메라를 앞에 두고 멕시코 국경 장벽 예산 등을 두고 격한 설전을 벌였다.

양측이 날카롭게 대립한 것은 국경 장벽 건설 예산 문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장벽 건설을 위해 의회에 50억달러 예산 배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출발부터 서로 비꼬면서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린 국경 장벽이란 아주 쉬운 일을 하나 남겨두고 있다"면서 "척, 당신 생각은 어때?"라고 물었다.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던 슈머는 "대통령님, 그걸 '정부 지원(funding government)'이라고 부릅니다"라고 조롱하듯 얘기했다. 슈머 대표는 트럼프가 열변을 토하는 동안 고개 돌리고 외면하면서 눈을 감고 코웃음 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민주당의 냉소적인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트럼프는 '장벽 칭송'을 이어갔다. "엄청난 장벽들이 세워지고 있다. 샌디에이고와 애리조나에서는 불법 월경이 92%나 줄었다. 어쨌든 장벽은 건설될 것이다. 국경 문제로 정부를 셧다운하는 것은 자랑스럽다."(트럼프)

이에 펠로시 대표가 "'트럼프 셧다운'은 있어서 안 된다"고 하자, 즉각 트럼프 대통령이 발끈했다. "뭐라고? 지금 '트럼프'라고 했나?"라며 "나는 앞으로 '펠로시 셧다운'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민주당 대표들이 대통령 앞에서도 한 치도 굽히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지난달 중간선거에서 예산을 관장하는 하원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이날 언론이 지켜보는 앞에서 진행된 양측의 팽팽한 설전은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국정 운영이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 때문에 파열음이 훨씬 심해질 것임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실제로 민주당 대표들은 이 자리에서 중간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받아들이라고 트럼프에게 요구했다.

"60명의 공화당 의원이 중간선거에서 자리를 잃었다."(펠로시)

"상원은 우리가 이겼는데?"(트럼프)

"중간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둔 민주당의 리더 자격으로 내가 이 자리에 왔다."(펠로시) "대통령, 모든 선거엔 결과가 따른다."(슈머)

"그 말이 맞는다. 그래서 지금 (공화당이 상원에서 이겨) 이 나라가 잘 돌아가고 있지 않나."(트럼프)

이처럼 날카로운 설전이 오가는 동안 펜스 부통령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끼어들지 않았다.

슈머 대표는 이날 회동이 끝난 후 기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성질을 부린다고 해서 국경 장벽이 건설되지는 못할 것"이라며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펠로시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경 장벽은 남성적 자부심의 문제인 것 같다"며 "나는 (트럼프를 달래기 위해) 엄마처럼 되려고 했다"고 비꼬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놀랄 만한 공개적인 입씨름은 아무런 결실 없이 크리스마스 직전인 다음 주말에 부분적인 연방정부 폐쇄 가능성을 높인 채 끝났다"고 했다.